태초에 신은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들에게 선도 악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뭐, 그 뒤에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으면 여러 가지 알 수 있을 열매를 그들의 거주지에 심어놓곤 '저거 먹지 마라? 먹지 마라? 뭔지는 안 알려줄 건데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 하고 두 번쯤 형광펜으로 밑줄을 쫙 쳐두는 뻘짓을 하긴 했지만. 대체 뭐야, 이 신은. 아주 어릴 적 세계에서 가장 메이저한 종교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내 머릿속을 스친 건 그런 생각이었다. 정말이지 어이없다. 선악을 정말로 모르게 하고 싶었다면 그런 과일 따위 안 만들었으면 되잖아. 만들었대도, 손 닿는 데 안 뒀으면 되잖아. 이런 건 불합리해. 인간이 불쌍하다구. 입술을 비죽 내밀며 그리 불평하자 형이 난처한 듯 웃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아직 중학생에 지나지 않았을 형에게 그건 꽤 어려운 화제였으리라.

"…알아줬으면 했던 게 아닐까. 역시."

"응? 뭘 말야. 츳키?"

저도 모르게 입밖에 내어 중얼거리고 만 말에 테이블 너머의 야마구치가 빠르게 반응했다. 말간 눈. 신뢰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순수한 신뢰에 가득찬 눈이었다. 강아지가 제 주인을 올려다볼 때 아마 이러할까. 가장 순수하게 신을 신앙하는 신자와 비슷하다고 하는. 혀끝에 녹아들어가던 케이크의 생크림이 도로 뭉쳐 딴딴히 굳은 듯 입속이 까끌까끌해졌다. 목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에 나는 저도 모르게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자잘한 얼음 부스러기가 배어든 향긋한 물은, 하지만 지금은 그저 씁쓸하게만 느껴졌다. 

 진짜 신이라면 이런 시선을 받는 걸 당연히 여길 수 있을까. 숭배가 섞이지 않은 시선에 화내고, 감히 이치를 알고 선악을 알아 신조차 판단할 수 있게 된 제 피조물을 보며 배신감에 몸을 떨게 될까. 그게 당연해질까. 하지만 츠키시마 케이는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인간에겐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신뢰는 무겁기 그지없다. 그 상대가 연애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역시 알아주었으면 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 치사한 신은.  

나는 테이블 건너편에서 말간 눈으로 이쪽을 보는 소꿉친구 겸 남자친구에게 조금 애매하게 마주 웃어보였다. 

"아무 것도 아냐. 그냥 혼잣말."

"흐응, 그래."

야마구치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이상 무언가를 물어오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기에, 별 반발조차 없이 제 의문을 똑 반으로 접어버린 게다. 어째서?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냐? 안 궁금해? 혼잣말이라는데? 사람을 앞에 두고? 도륵도륵, 입안을 구르는 선악과 과실들을 나는 그대로 전부 씹어 삼켰다. 달콤한 케이크에 홍차도 함께 곁들이니 꽤 자연스레 잘 넘어갔다. 늘 있는 일이다. 

츠키시마 케이는 별 것 아닌 인간이고, 그런 인간에겐 차라리 숭배에 가까울 정도의 신뢰는 무겁기 그지없다. 그것이 무너진 뒤가 무서워 깨버릴 생각도 못하고 어중간히 짊어진 채 휘청대기만 할 정도로. 깨진 신뢰가, 조각난 동경이 얼마나 아프게 튀어 살에 모질게 박히는지, 그 조각을 빼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세상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므로. 

못할 짓이다. 내심 혀를 차며 나는 이제 아무 맛도 안 느껴지게 된 케이크를 다시 한 입 입으로 옮겼다. 계절 신상품이었는데. 먹자마자 역시 이 가게를 단골로 삼길 잘 했다고 생각할 정도의 맛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깔깔하고 미끄덩한 크림 덩어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못할 짓이다. 정말로. 얼굴을 찌푸리는 것만은 어찌어찌 피할 수 있었다. 그것만이 위안이었다. 일단은 데이트인데 거기서 아무 이유도 없이 안색을 흐리다니 신이라면 몰라도 애인으로선 실격이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조용해져서 당황한 것일까. 야마구치가 잠시 눈을 데록데록 굴리다 화제를 돌렸다.

"히나타랑 카게야마. 사귀는 것 같더라."

"……알아."

"아, 역시?"

"그렇게 서로 의식하는 게 눈에 보이면 누구라도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 아마 우리 부에 없을걸."

아마, 라고 말한 건 일순 뇌리에 스친 모 선배들 때문이었다. 이성보다는 본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눈치와 섬세함이라곤 약에 쓰려 해도 없는-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사람들은 가끔 동물적이라는 말 외론 표현하기 힘든 감으로, 배려와 관찰론 도저히 모를 뭔가를 알아채곤 했다. 평소엔 섬세함이고 사생활 보호고 내가 알까보냐. 그거 맛있는 거야? 하는 사람들이건만, 어째서인지 그럴 때엔 '알고는 있었지만, 네가 얘기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란 이유로 입을 꼭 다물고 있곤 했다. …적어도 우리 때는 그랬다. 

"그런가아. 난 잘 몰랐거든. 어렴풋이 예상 정도는 했지만. 의식한다고 섣불리 사귄다고 판단하기도 또 그러니까. 츳키는 대단하네."

"……딱히. 그렇지도 않아."

얼마 전까지는 나도 너랑 비슷한 정도였으니까. 뒤의 한 마디는 포크 끝을 가만히 깨물며 삼켰다.  진실을 털어놓는 데에는 언제나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예를 들면, '그럼 츳키는 어떻게 알았는데?' 라는 물음에 되돌려줄 답이라거나. 그걸 지금 야마구치에게 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목구멍 속으로 우겨넣은 질문 대신 야마구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 야마구치는 어떻게 알았는데?"

"응? 아아. …음. 말해도 되려나. 히나타랑 카게야마가 찾아왔거든. 상담에 응해달라고."

아주 잠시, 야마구치의 눈이 흔들린 게 보였다.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이야기해도 될지가 고민되었던 거겠지. 쓸데없이 성실한 성격이니까. 히나타와 카게야마 두 바보도 그랬기에 나름 심각했을 고민을 가장 먼저 이 녀석에게 상담하려고 했을 거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그 둘의 판단은 적절했으리라. 아주 잠시나마 그 눈이 흔들린 게 무엇보다 좋은 증거였다. 나는 약간 체념과도 닮은 뭔가를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뭘 물어봤는데?"

"남자끼리 어떻게 섹스하느냐고."

양심의 가책이니, 고민이니 하는 건 인간적인 고뇌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거다. 묻는 즉시 술술 나오는 대답에 나는 우월감보단 우울함을 곱씹으며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는 어떤 대답을 했는데? 라고 문득 묻고 싶어졌다. 마치 정말로 신이 되기라도 한 듯. 상대의 난처함도 고민도 사정도 전부 무시해버리고 절대자의 시점에서. 폭력적일 정도의 호기심이었다. 나는 재차 포크의 끝을 씹었다. 어째서 이러는 걸까. 츠키시마 케이. 신 같은 게 되어 보았자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바보 같지."

야마구치는 웃었다. 온화한 미소였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 두 사람에 대한 매도-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 미소에 섞인 건 아무 것도 모르고 1+1을 5라고 대답해버린 어린아이에게 향할 법한, 잔학무도한 온화함이었다. 녀석들은 정말로 물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지. 내가 미안해할 법한 일도 아니건만, 문득 두 바보 녀석들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초보자에게 이런 건 아무래도 좀 힘들지.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너희들이 상대를 잘못 고른 탓이지만 말이야.

"츳키가 그런 거 할 리가 없는데."

"……"

홍차가 마침내 바닥을 보였다. 케이크는 아직 조금, 맨 마지막에 먹으려고 치워 두었던 꽃 모양으로 자른 복숭아와 거기에 아주 조금 묻은 크림이 남아있었지만-아무래도 그것만으론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속이 까끌까끌했다. 지금껏 꾸역꾸역 우겨넣은 지방과 당분 덩어리들 새에 눌리고 또 눌려 진작에 압사당했을 터인 속내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안 죽고 계속해서 신트림처럼 입술 새를 비집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케이크 한 입에 우울함 한 입. 홍차 한 모금에 쓸데없는 질문 한 모금. 평소에 정해뒀던 규칙이 깨져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날이 쓸데없이 더웠던 탓이다. 뭐, 신은 결국 자연재해를 인간 마음대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가장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어쩌면 이건 꽤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옛날 옛적, 낙원의 신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인간의 바로 옆에 심어두고, 절대로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때는 제멋대로라고 생각했고, 조금 지난 뒤에는 거기에 멋대로 해석을 붙여 공감해버렸다.

신은 분명, 인간에게 선악을 알아주었으면 했으리라고. 자신과 같은 시각에서, 같은 것을 보고 숭배가 아닌 다른 뭔가를 담은 채 자신을 봐주기를 바랐으리라고. 

전부 알아버린 다음에도 사랑해주길 바랐으리라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야마구치가 그대로 굳었다. 푸딩을 담고 있던 숟가락이 힘없이 테이블에 떨어지며, 크림을 담은 푸딩이 처참할 정도로 꼴사납게 테이블에 흩어졌다.

세계가 굳었다.

"왜 내가 하기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꼴사나울 정도로 버석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떼어, 세계의 신인 츠키시마 케이는 준엄한 칙령을 내렸다.

나는 오늘부로 신이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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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난해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좀 복잡한 두 사람이지만 일단 서로에게 애정은 있다고 생각해요. 진짜로요. 

저번에는 이름만 간간히 나오던 츠키시마의 턴. 다음으로 마지막입니다.

끝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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