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게님께 리퀘받은 글. 사랑하는 소녀에게 마음이 담긴 꽃을 주며 유혹하는 하프 몽마 이야기. 여유있는 것 같아 보여도 멀린이 엄청나게 마스터에게 빠져 있다…는 걸 쓰고 싶었는데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사정상 중간에 한번 끊었다 다시 쓰니 정말...수습이 안 되네요...게님 미안...( mm)

종장 이후 시점입니다. 멀린이 들어오는 건 7장 이후니까! 네타는 안 넣을 생각이지만 저도 모르게 분위기 묘사 등에서 여러 가지 들어갈 수 있으니 분위기로라도 FGO 종장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관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베리스: 별칭 백설공주, 눈꽃.

꽃말:  첫사랑의 추억. 우아함. 깨끗함. 달콤한 유혹. 마음을 끈다.



"결국 죽은 걸까. 나."

이 세상의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꽃밭을 눈앞에 한 소녀가 처음으로 한 말은 그런, 권태감에 가득찬 것이었다. 몽마는 저도 모르게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와아, 예뻐!' 라는 말 정도는 해주길 바랐는데. 마이 로드."

"그치만 온갖 계절의 꽃이 핀 꽃밭이라니. 아무리 봐도 저승이잖아."

"엘뤼시온인가? 그리스뿐 아니라 수많은 문화권의 낙원 혹은 저승관에 등장하는 관념이긴 하지. 신화를 꽤 공부한 모양이네."

"……시간은 많으니까."

소녀는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긴 속눈썹이 눈동자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상큼하게 꽃향기를 풍길 듯한 햇살이건만, 그 가운데에도 그림자만은 서늘했다. 어쩐지 유쾌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에게는 감정이랄 것은 없으며, 인간의 행동을 보고 흉내낼 뿐이라 평하고는 있었지만, 그렇다 하여 느끼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몽마는 지금 제 속에 몽글몽글 끓고 있는 작은 응어리를 '불쾌함'이라 정의했다. 그는 짐짓 입술을 비죽였다.

"아발론은 결국 네 세상과는 유리되어 있는 곳이니 그 감상은 타당할지도 모르겠지만-조금 재미없는걸.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조경 자체에는 꽤 자신이 있었는데."

아니면 장미는 마음에 들지 않아? 토라진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비죽이며 제 얼굴을 들여다보는 제 서번트의 모습에 소녀는 결국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 웬만한 인간이라면 보자마자 숨쉬는 것조차 잊을 법한 미모이건만, 몽마는 제 얼굴의 수려함 따위 알 바이냐고 말하기라도 하듯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입술을 비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파안대소한 뒤, 소녀는 그제야 조금 풀어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정말로 예뻐. 살면서 이런 걸 정말 이 눈으로 봐도 될지 조금 주저하게 될 정도로."

"불초 신하가 주군을 초대한 것 뿐인걸. 지나친 겸양은 때로는 독이야. 마이 로드."

자. 이쪽으로. 몽마는 소녀를 향해 제 한쪽 손을 내밀었다. 기사의 에스코트라도 흉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깔깔 재차 소리내어 웃고는, 소녀는 그 손에 제 한쪽 손을 얹었다. 칼데아에는 원탁의 기사들도 있었기에, 레이디 취급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참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건 여전히 변함없었지만. 몽마는 만족스러운 듯 빙긋 웃고는 그녀를 꽃밭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흙 냄새조차도 없이 그저 꽃만으로 이루어진 융단인 듯하던 공간 한 구석에 어느 새인가 작은 돗자리가 나타나 있었다.

"테이블이 더 나았을까?"

"그쪽도 그 나름대로 괜찮았겠지만. 이쪽도 충분히 근사해. 게다가 꽃이 더 가까이 보이니까."

제 주군이 내린 평가에 마술사는 헤죽 웃었다. 제가 피우는 꽃 같은 웃음이었다. 주군의 감사한 말씀에 힘입어 미숙한 재주를 하나 더. 마술사는 비어있는 쪽의 손을 들어 허공에 손짓했고, 다음 순간 돗자리 위에는 작은 바구니와 다구가 나타났다. 백자로 된 티팟과, 흰 자기 컵 한 쌍.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뭐야, 이거. 마법 같아."

"황송한 평가 고마워. 그냥 간단한 환술이지만. 그도 그럴 게, 여기. 꿈이니 말야."

하릴없는 잡담을 나누다 보니 돗자리가 코앞이었다. 융단처럼 깔린 꽃 위에 작은 융단이 또 하나.  액자 속에 들어가는 것만 같다고 소녀는 문득 생각했다. 그녀를 돗자리 위로 안내한 마술사는 요술이라도 묻은 듯한 손길로 능수능란히 차를 준비하고, 바구니의 내용물을 꺼내어 돗자리 위에 차렸다. 소녀가 자신도 돕겠다고 말을 꺼낼 틈도 없이, 2인용의 근사한 애프터눈 티 세트가 돗자리 위에 펼쳐졌다. 티 푸드는 햄과 치즈가 든 샌드위치와, 얇은 오이가 든 샌드위치. 소녀는 주저하면서도 마술사가 권하는 대로 샌드위치를 한 입 입에 물었다. 아삭, 하고 신선한 오이에 버터의 풍미가 상큼하게 섞여 입속을 돌았다.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맛있어."

"거 다행이군. 만든 보람이 있어."

마술사는 만족스레 웃으며 찻잔을 들어 소녀에게 권했다. 대체 언제 따랐는지, 흰 찻잔 안에는 선홍색 액체가 남실남실 따라져 김을 내고 있었다. 마법 같아. 햇병아리라곤 하지만 일단은 마술에 몸을 담은 이가 해선 안될 말이긴 하지만, 소녀는 재차 그리 중얼대었다. 칼데아에 오기 전엔 마술의 마 자도 모르는 일반인이었으니, 눈앞의 기현상에 학구열보다는 감탄을 먼저 느끼고 마는 감성을 꾸짖을 수는 없으리라.  뭐, 그런 그녀가 상대였기에 마술사도 짐짓 거드름을 빼며 이렇게 '마법 같은' 티 파티를 연출한 것일 터였다. 계속 두었다간 찻잔 쪽에서 뿅 튀어올라 '자, 나를 마셔!' 라고 재잘댈 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마술사. 유폐되어 있으면서 인터넷 서핑까지 배웠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고양이가 나오는 동화라거나, 디X니 명화 같은 걸 전부 섭렵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소녀는 조심조심 찻잔을 들어 내용물을 한입 들이켰다. 

"이것도, 맛있어."

"그치? 아, 저쪽 샌드위치 먹을 땐 말해. 찻잔 내용물을 바꿔줄 테니까. 햄의 풍미에 잘 어울릴 만한 찻잎을 알거든."

"뭐야. 다르게 먹어야 하는 거야?"

소녀는 기가 막혀 깔깔 웃었다. 와, 이거. 진짜 레이디 같아! 에미야도 이렇게까지 철저하겐 안 했는데. 마술사는 짓궂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내가 있던 시절의 브리튼엔 이런 풍습이 없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브리티시 티 타임이라고들 하잖아?"

어린아이가 재주를 뽐내며 으스대는 듯한 모습에 소녀는 한층 더 크게 웃었다. 딱히 웃을 일은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웃어본 건 얼마만일까. 소녀는 한참을 웃고 또 웃다가 결국 돗자리에 폭 등을 대고 드러누워 버렸다. 돗자리 아래에 피어 있을 꽃들이 도톰한 융단처럼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아, 위험해. 돗자리 아래에서 벌어졌을 참상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가, 소녀는 조금 뒤에야 이게 꿈이었다는 걸 생각해냈다. 아아, 꿈이란 건 편하구나. 사정 좋게 향기만 즐겨도 되고. 그녀는 제 코끝을 간지럽히는 풋풋한 향을 크게 들이마신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꽃 걱정 했지."

하얀 마술사가 햇살을 가렸다. 여전히 짓궂게 미소지은 채였다.

"멀린한텐 바로 들켜버리네. …꿈이니까 괜찮은 거, 맞지?"

"그야 물론이지. …그런 걸 신경쓰진 않길 바랐는데."

저를 내려다보는 마술사의 시선에 꾸짖음 비슷한 게 담겨 있었다. 하하, 소녀는 마른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커다란 손이 시선을, 그 잠시의 도피를 차단하듯 바로 얼굴 옆에 놓였다.

"여러 가지 경우를 상정하고 배려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미덕이지만, 그게 널 괴롭힌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내 주군."

"그, 그치만 너무 생생하니까 잠깐 착각한 것 뿐이야. 어쩐지 꿈 같지 않아서."

"그야 그렇지. 특별히 제작한 음몽이니까."

음, 뭐?! 소녀가 화들짝 놀라 무어라 할 새도 없이 그녀의 시선 앞에 흰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한층 짙어진 그림자 위에 흘러드는 윤곽이 어쩐지 선명해 소녀는 저도 모르게 그 광경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림자 진 얼굴의 미소가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했다. 보랏빛 눈동자가 광물같은 이채를 띄어, 소녀는 일순 이 몽마가 이전 어딘가의 특이점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는 인간과 같은 감정은 없으며, 그저 타인이 비추는 감정을 그럴싸하게 흉내낼 뿐이라고. 지금의 그가 딱 그 말에 알맞아 보인다고 생각했던 순간,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도 함깨 떠올려냈다. 용수철처럼 꼿꼿한-반발이다. 

숨을 들이켰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달콤한 향이 폐부에 들이찼다. 독에는 내성이 있을 터였건만, 어쩐지 이 향기에는 그 내성도 안 통하는 듯, 머리가 한순간에 어질어질해졌다. 의외로 거친 손가락이 소녀의 뺨에 닿았다. 마술사답지 않은, 굳은살로 가득한 손. 아르토리아의 검술 스승은 나였으니까. 하며 소년처럼 배시시 웃던 얼굴을 떠올렸다. 캐스터이면서도 싸울 때 검을 들고 즐거운 듯 뛰쳐나가던 것이 떠올랐다. 어린애처럼 웃으면서.

단 향기가 재차 풍겼다. 등 뒤의 흙 냄새가, 꽃향기가 차라리 파릇하게 느껴질 정도로-그저 달기만 한 향이다. 돗자리 한 장 너머에 있을 그것들이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눈앞의 마술사 외에는 전부 다, 멀어서-소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몽마는 꿈에서 깨기라도 한 듯 두어 번, 느릿하게 눈을 깜작였다. 질량이라도 가진 듯 끈끈하고 묵직하던 단내가 물러간 자리에 훅, 빈 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 파릇한 꽃향기가 밀려들었다. 소녀는 심호흡을 했다. 그림자가 물러갔다. 그녀의 위에서도, 머릿속에서도.

"멀린."

소녀는 누운 채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아직도 어질어질해, 몸을 일으키기는 힘들었다. 흰 그림자는 물러가 어느 새 시야에 없었지만, 자신이 부르면 그가 답하리라고 한치 의심도 없이 믿었다. 아니나다를까, 커다란 손이 주저하면서도 허공에 뻗은 소녀의 손끝을 감쌌다. 

"조금 골려주기만 할 생각이었어. 정말로."

그로선 드물게도 풀죽은 목소리로 마술사가 말했다. 

"아주 조금 놀라게만 해줄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중간부터 진심이 되어버려서."

"진심으로, 뭘 한 건데?"

"……유혹."

"대체 왜?!"

"그냥 장난이었다니까. 별 뜻 없어. …아니, 없나?"

마술사는 정말로 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한동안 소녀의 손만을 만지작대며 고민했다.

"기껏 특제 음몽까지 만들어 초대했는데 여기서까지 뭔가를 걱정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달까. 아니."

남의 일 말하듯 제 속내를 읊던 마술사의 목소리가 일순 뚝 그쳤다. 

"…멀린?"

소녀의 어깨 부근에 폭신한 무언가가 얹혔다. 그것이 마술사의 머리라는 걸 조금 뒤 알고, 소녀는 눈을 껌벅였다. 얼굴을 붉혀야 할 것도 같았지만, 뭐든 하나같이 당황스런 일뿐이라 놀라움조차 한 박자씩 늦게 따라왔다. 소녀는 반사적으로 마술사의 폭신한 머리카락을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었다. …아, 역시 폭신폭신하다. 이 머리카락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만지면 포우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더랬지.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말에 소녀는 꽤 오래 갖고 있었던 궁금증이 풀린 기쁨마저 전부 잊어버렸다.

"……조금. 질투했달까."

그가 제 어깨에 머리를 묻고 있었기에, 목소리는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맙소사.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소녀는 그가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도대체 상상이 가질 않았으니까.

"지금 엄청 안 어울리는 말 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걸 자기가 말하는 시점에서 말야."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의 정신은 충격에 강한 편이었다.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 있어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냉정함을 회복한다. 지금껏 갖은 큰일을 겪어온 탓인지, 아니면 타고난 천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이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제 자신의 머리에 내심 한숨을 쉬며, 소녀는 제 위에 누운 몽마를 가볍게 밀어냈다. 그러니까, 딱 얼굴이 마주할 정도로만.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현실보다 몇 배나 더 생생하잖아. 감각."

"키스한 다음에 할 만한 멘트 중에서도 최악이네. 주군."

"장난 칠 생각으로 사람을 유혹해놓고 할 말이야?"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나오는 멘트가 이 모양이었다. 마술사와 그 주인 되는 소녀는 서로를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다, 한번 허탈하게 웃고는-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서로를 탐색하듯 조심스럽게―녹아들어가듯 서서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짙게.

"……손 깍지까지 낄 필요가 있어?"

"분위기, 분위기."

조금 열이 올라 발개진 소녀의 입술에 마술사가 가볍게 입맞춤을 떨궜다. 그 감각마저 생생해, 소녀는 작게 떨었다. 야단났군. 하고 마술사가 빙긋 웃었다. 전혀 곤란하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다. 

"야단이라니, 뭐가?"

소녀는 퉁명스레 물었다. 겹쳐진 손은 커다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억지로 빼는 게 내키지 않아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다. 저를 내려다보는 마술사의 고운 얼굴이 아주 조금 상기되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더 허락해달라고 조를 것 같아서."

웃음띤 입술이 소녀의 뺨 옆에 와 닿았다. 숨결과 목소리와, 미약한 체온만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민감해진 피부를 간질였다. 아마도 이게 '조르는 것.' 남녀간의 애정사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은근한 몸짓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무도 생생하게 와 닿았다. 소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꿈이 아니라면 이대로 심장마비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그 와중에도 피부에 느껴지는 숨결과 온기는 유리면에 미끄러지는 얼음처럼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귀를 타고, 목선을 타고. 이윽고 목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쇄골 사이의 움푹 팬 곳으로까지. 보랏빛 눈동자가 함뿍 단 웃음을 띤 채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부디 허락을, 레이디. 라고 애원하기라도 하듯. 혹은―어서 빠져들어 버리라고 유혹하기라도 하듯. 

아. 아무런 압력도 가해지지 않고 있었건만, 어째서인지 그곳을 꽉 눌린 듯 숨이 막혀 소녀는 작게 탄식했다. 위험해. 수많은 특이점을 오가며 키워온 감이 열심히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어디까지고 용납해버리고 말 것 같아서―

소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이런."

몽마는 탄식했다. 조금 전까지 제 밑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던 소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너무 겁을 줬군."

꿈에서의 도피. 그것이 아무리 잘 만들어진 꿈이고, 아무리 강력한 몽마의 것이라 해도 꿈의 주인은 결국 꿈을 꾸는 자이기에―깨지는 것은 이리도 한순간이다. 아―아. 앞으로 조금이었는데. 

"뭐어, 아무리 그래도 꿈에서 전부 마쳐버리는 건 나도 그리 내키진 않았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그럼, 사랑하는 내 주군. 남은 오늘은 꿈도 없이 깊은 잠 속에서 푹 쉬기를.

몽마는 주인을 잃은 꿈의 베일을 닫으며 허공을, 이미 이 자리를 떠난 꿈의 주인을 향해 중얼거렸다. 

잠에서 깬 소녀가 제 침상을 융단처럼 깐 하얀 꽃을 보고 지난 밤의 꿈을 생각해내기까지 앞으로 몇 시간.

그리고 그 꽃의 꽃말을 조사해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기까지 앞으로 십수 시간.

인간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라 했던 마술사가 생각보다 단단한 제 연정에 당황하기까지―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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