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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3]어떤 꿈의 말로

발키리의 말로를 어째서 토르는 모르고 로키만 아는지에 대해. 스포있음. 개그물?

"왕제 전하께서는 뭔가 특별한 교육이라도 받으셨는지?"

로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때 그에게 강렬한 한방을 날렸던 발키리가 거기에 서 있었다. 이름이-브륜힐데랬던가. 뭐, 부를 일은 없겠지만.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로키가 제 시야에 들어서기만 해도 당장에라도 죽일 듯 눈을 부라리곤 했던 것이다. 환술을 쓰지 않았다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던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지만, 깊게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 지금도 그녀는 왕제 전하니 어쩌니 말은 공손하게 하고 있었지만, 입꼬리를 불손하게 올린 채 로키를 비뚜름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게 부대 단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니, 오딘 치세 만만세로군. 끝났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로키는 뒤로 돌았다. 이 자에게 등을 보이며 대화하다 뭔 꼴이 날지 몰랐다. 

"전하는 무슨. 말 편하게 하지. …그나저나, 특별한 교육이라니?"

"이제 와서 새삼스럽긴 하지만, 폐하와 라키 당신이 내 과거를 알았을 때의 반응이 꽤 달랐던 것 같아서."

로키야. 라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말해봤자 소용없을 걸 재차 지적해봤자 시간 낭비였다. …딱히 그녀의 한쪽 손에 들린 빈 술병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절대로. 

"뭐, 대강 짐작은 간다만…내 형님은 대체 뭐라고 했기에?"

"어릴 땐 발키리가 되는 게 꿈이었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지. 발키리의 임무는 왕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용케 안 죽였네?"

"기껏 비싸게 팔아놨는데 첫 경기에 출전하기도 전에 죽이면 내가 변상해야 하잖아."

아스가르드의 위기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한 번 지나갔노라. 자본주의 만세. 새삼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브륜힐데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귀엽잖아. 오랜만이었거든. 장래 희망은 발키리입니다~란 소리 듣는 건."

"…귀엽다니, 천하의 토르가 그런 말을 다 듣는군."

"말해두지만, 내 현역 시절은 당신 형이 옹알이도 겨우 했을까 싶을 때거든?"

"알아, 알아. 그냥 좀 혼란스러운 것 뿐이야."

로키는 미간을 슬슬 쓸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사카아르는 다른 곳과 시간의 흐름이 다르고, 아스가르드인은 장수하는 종족이며 우리가 어렸을 때 이야기로 들었던 전설 속의 특수부대원이라면 현재 나이가-기타 등등. 다행히도 로키는 살아남는 법을 잘 알았기에, 거기서 브륜힐데에게 '그래서 그대, 나이는?' 같은 걸 묻는 짓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짓은 이미 한 것도 같지만.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로키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다음 순간, 조금 전까지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펀치가 날아왔다. 바람 가르는 소리 직후에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도 확실히 들렸다. …왕제 전하 어쩌고저쩌고 한 지 몇 분도 안 지났거든요.  그러나 로키 오딘슨은 세상 사는 법을 잘 아는 반신이었기에 그 주먹에 딱히 무어라 토를 달지는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브륜힐데는 손을 털며 어깨를 으쓱하기만 할 뿐,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질문을 이었다.

 "그런데 나이도 그리 차이나지 않을 제2 왕자께선 내 예전 신분을 알자마자 몰살이란 단어부터 입에 담으셨지. 뭐, 몰살당한 이유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잖아? 하고, 마지막 발키리가 시퍼런 눈으로 로키를 노려보았다.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미소짓고 있는 채였단 게 또 무서웠다. 이미 뼈저리게 알고는 있었지만-역시 엄청나게 미움받고 만 것 같다. 뭐, 미움받는 건 익숙하지. 로키는 양 손을 어깨 위로 올려 항복의 뜻을 표했다.

"뭘 상상하는지는 아주 잘 알겠어. 왕위에 오를 자에겐 알려주지 못할 피묻은 역사를 그 보좌가 될 동생에게 알려준다―대강 그런 거겠지? 있을 법한 가설이지만, 틀렸어. 전능하고 자비로우신 오딘께서는 일단은 우리 형제를 동등하게 키우셨거든."

로키의 말에 숨은 가시를 브륜힐데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호오.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당장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오딘을 함께 씹어줄 상대라고 판단한 건지도 모른다. 고마워, 한결 낫군. 로키는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발키리에 대해 알게 되었던 건 개인적으로 조금 조사를 했기 때문이야. 어디서 듣고 왔는지, 토르가 자기는 커서 발키리가 되겠노라고 떠들어대서 한동안 시끄러웠거든. 궁 안의 아무도 말리질 않더군."

로키는 꽤 오랜만에 그 어릴 적의 금빛 궁전을 떠올렸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은 커서 발키리들처럼 위대한 전사가 되겠노라고 종알대는 형의 모습을. 평소와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고, 형이 그럴 때마다 궁인들은 그게 일년, 아니 반년도 채 못갈 변덕임을 알면서도 '그러믄요. 왕자님께서는 되실 수 있고말고요.' 하는 것 또한 일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일상에 섞인 위화감을 눈치채는 데에 남달리 재능이 있었던 둘째 왕자는 그 때 처음으로 발키리란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키워드 자체는 꽤 많이 퍼져있는데 정작 읽을 만한 책은 앞쪽 서고에 없더군. 재미있다고 생각했지. 다 조사하는 데에 꼬박 이틀 걸렸어."

"얼마나 조사했길래 그 정도나 걸린 거야?"

"상상에 맡기겠지만…술 마시며 추억 얘기를 할 상대가 필요하다면 불러 줘도 좋아."

"술을 핑계로 손이 삐끗해 그 목에 칼을 꽂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고려해 보도록 할게."

진실된 마음은 늘 핍박받나니. 뭐, 처음부터 씨알도 안 먹힐 소리란 건 알고 한 말이었기에 그리 충격은 받지 않았다. 브륜힐데가 순순히 그러마고 말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의심스러웠으리라. 술을 핑계로 내게 심한 짓을 할 생각이군? 하고.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의 꿈 중 하나를 박살낸 건 나야. 발키리는 여자밖엔 될 수 없다고 말해줬지. 표정이 볼만하더군."

슬슬 그 길고 예쁜 금발을 계집애 같다고 놀리는 간큰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시기였기에, 토르는 꽤 빠르게 새로운 장래희망 중 하나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불온한 이름이 더는 들리지 않게 된 데에 궁인들은 꽤 안도했던지, 한동안은 로키가 서고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달콤한 간식들이 슬쩍 옆에 놓이곤 했다. 그 때엔 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이름에 얽혀 나올 다른 이름이 두려웠던 것이겠지. 왜 로키에게만 과자를 주는 거냐고 투덜대는 형에게 코웃음을 쳐 주며 전부 맛있게 먹었더랬다. 

"그럼, 성별에 대해서만 가르쳐준 건?"

"……응?"

추억에 잠겨 있던 로키에게 날카로운 물음이 하나 더 날아왔다.

"말해두지만, 아직 순진한 어린 시절이라 형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고. 씨알도 안 먹히니까. 댁이 여덟 살 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이미 들었는데 이제 와서 속을 거라곤 생각 안 하지?"

왕제 전하에서 당신으로, 당신에서 댁으로. 호칭의 수직낙하로군. 나쁘지 않아. 뒤에서 욕하는 것보단 이쪽이 낫지. 너무 새로워서 좀 여러 가지로 깨긴 하지만. 로키는 코를 울렸다. 

"컨셉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뭐?"

"내가 본격적으로 왕위에 관심 가졌던 게 언제인지는 이야기 한 적 없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된 기억은 없으니까."

"될 생각도 없으면서 빈말은. 뭐, 전부터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꽤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왕의 직속인 엘리트 전사 부대. 나중에 내가 왕이 되고, 토르가 그 옆에서 직속 전사 부대를 이끌어준다면 꽤 멋질 거라고 생각했어. 왕의 명령만 듣고 왕의 곁에 있게 된다면 평생 떨어질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만들 거라면 전멸 어쩌고 하는 소리는 미리 안 하는 게 낫잖아? …잠깐.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참고 삼아 묻겠는데, 그거 언젯적 이야기야?"

"음? 형 머리 길이가 대강 어깨를 찍을 때쯤이었으니까-"

브륜힐데는 제 앞에서 손가락을 들어 본격적으로 계산에 들어서려 하는 반신을 가까스로 제지했다.  자기가 물어놓고선 중간에 멈추는 건 또 뭐야. 로키의 불평도 아랑곳않고 그녀는 미간을 감싸쥐었다. 좀 전에 비운 술의 여파가 한발 늦게 올라오는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빌어먹을, 역시 오딘의 가족사에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갑자기 왜 또 그러는데?"

"시끄러워. 당신은 앞으로 당신 형이랑 만날 때엔 입회인 꼭 세워. 이 중증 브라더 콤플렉스 자식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항의를 무시하고 그녀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몇 번 흔들어 보았다. 물론, 그리 한다 해서 비어 버린 술병이 다시 차오르는 일은 없었다. 갑자기 사카아르가 맹렬히 그리워졌다. 이럴 때 마실 술의 종류만큼은 두 손으로 다 꼽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으니. 

역시 오딘의 가족들과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씹어 뱉듯이 중얼거리면서도 왕년의 엘리트 전사는 머릿속의 호위할 것 목록에 '폐하의 정조'를 추가로 집어넣었고, 로키에게는 '언젠가 술기운을 핑계로 암살할 것'이란 꼬리표를 달아두었다. 앞쪽 정조일지 뒤쪽 정조일지는-알 게 뭐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정하라지. 거기까지 생각했다가는 정말로 다 집어던지고 다시 사카아르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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