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TOV/시타마치]手のひら天の川

미르엔님과 풀었던 썰로 생명선이 짧은 유리 이야기입니다. 엔딩 뒤 시점.

'손 위의 은하수' 라고 한국어로 옮길 수 없는 제목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저 어감이 그렇게 와닿았어요. 둘이 옛날옛적부터 붙어먹고 있는 사이란 설정이고 둘다 뼝자미가 낭낭합니다. 유리가 좀 많이 시인이니까 감안하고 봐 주셔요.

 



"그러고 보니, 전에 의뢰로 사막 쪽 갔을 때 말인데."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꺼낸 말이었다. 침묵을 찢을 말이라면 뭐라도 좋았다. 어제 저녁밥은 닭고기를 넣은 볶음밥이었어. 당근이 조금 덜 익었더라고…따위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맥락의. '유리, 한 다음에 추스르고 바로 가 버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유리가 원래 그런 성격인 건 알지만 적어도 몸이 식을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있다 가면 안될까?' 라고 프렌이 부탁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이다. 딱히 프렌은 대화를 빙자한 아무말까지 요구해오진 않았다만,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정사를 마친 뒤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할 때의 그 뭐라 하기 힘든 분위기를. 

보통이라면 서로 눈을 마주치거나 사랑스럽다는 듯 시선을 교환하거나 입맞춤을 하면서 보낼 법한 시간이리라. 아니면 조금 전에 했던 짓에 대한 감상을 나누거나, 정말로 아니면 그냥 사랑한다고 몇 마디 달달한 말을 보내거나…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늘어놓다 보니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은, 이라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연애를 해본 적 자체가 없었으니까. 여튼, 다른 사람들은 다 그리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프렌에게 그런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금껏 일을 치르고 나면 어디 불륜이라도 저지른 듯 서둘러 빠져나가곤 했던 것도 실은 이 때문이었다. 어찌 하면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프렌이 딱 그 부분을 집어 지적해버린 이상 더는 도망칠 수도 없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프렌 이 자식은 침묵이, 정사 뒤의 그 분위기가 어색하지도 않은지 말도 없이 내 얼굴을 빤히 보고만 있었다. 

요컨대, 제길. 쑥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다. 간질간질한 침묵을, 시선을 어디론가라도 좋으니 돌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직업상 화젯거리만은 넘쳐났다. 퐁퐁 솟는 화젯거리들 중 한 바가지, 제일 위에 떠다니던 걸 대강 퍼내어 침묵 위에 부었다. 프렌의 시선에 의문이 어렸다. 멍하니 그저 내 모습만을 담던 눈에 잡념이 고였다. 시선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겨우 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시선이 아주 조금 위에서 비켜났다고 그거에 또 여유가 생겨,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데즈엘 사막 근처의 부락이었거든. 거기서 어떤 할머니 짐을 들어드렸는데, 알고 보니 점술가라지 뭐야. 답례 대신에 점을 봐주시겠다길래 속는 셈치고 한번 봤지. 그런데 이게 독특하더라고."

나는 한쪽 손을 들어 허공에 좌악 펼쳤다. 어슴푸레하게 켜둔 등불빛이 손날께에 괴었다. 손을 조금 옆으로 비틀자, 빛이 주르르 손등을 타고 아래로 흘렀다. 

"카드도 수정구슬도, 다른 이상한 도구도 안 썼어. 뭐랬더라. 음…손금? 수상? 뭐 그런 거였는데. 손바닥에 있는 금만 보고 운명을 읽는다더군. 신기하지?"

프렌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 허공을 향했다. 손금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방은 어두웠지만, 그리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뭐, 어차피 보인대도 나도 프렌도 손금 따위 읽을 줄 몰랐지만. 리타가 때때로 들여다보는 마도서의 암호들처럼 말이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재미있었다. 손바닥 위에, 암호. 꽤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점괘는 어떻게 나왔는데?"

조금 잠긴 목소리로 프렌이 내 다음 말을 재촉했다. 아직 정신이 다 안 돌아온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대로 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 음." 나는 재차 기억에서 한 바가지, 어떤 사막의 밤을 떠올렸다. 노파가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찬찬히 살피던 감각이, 분명 침침할 터인 그 눈에는 지나치게 어두워 보이던 촛불빛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 촛불빛도 딱 이 정도의 밝기였던 것 같다. 나는 들고 있던 손을 조금 내려, 프렌에게 손바닥이 보이도록 뒤집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투박한 손바닥에 쏠렸다. 마치 처음 결계 밖으로 몰래 나가 별이 흐르는 밤하늘을 보려 했던 어릴 적 같았다. 결계의 빛에 가로막히지 않은 밤하늘은 손을 뻗어 움켜쥐면 그대로 잡혀 검은 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았고,  그 새에 씨앗처럼 박힌 별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았더랬다. 익은 과일을 손으로 뭉개면 그러하듯이. 잡을 수만 있다면 멋지겠다고 생각해, 작은 손이나마 한껏 하늘로 뻗어 빈 손으로 허공을 조물대었더랬다. 

…뭐, 지금 보이는 건 살풍경하기 그지없는 석조 건물의 천장뿐이고, 손바닥은 아래를 향하고 있긴 했지만 말이지. 

"뭐랬더라. 뻔한 얘긴데 은근 들어맞아서 웃었지 뭐야. 어디 한 군데 진득히 붙어있을 성미가 아니고, 인생에 파란이 많긴 한데 그만큼 귀인도 많아서 괜찮을 거라나. 거 있잖아. 바람 막 부는데 누름돌로 눌러놓는 것처럼."

사람을 보자기나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말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그때 노파가 손가락으로 훑던 자리를 하나하나 따라 훑으며 클클 웃었다. 프렌도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뭐랬더라. 안 불러도 될 화를 부르는 경향이 있으니 입 조심하고."

"굉장한걸. 그 분, 엄청 용하잖아."

"어딜 봐서?!"

큭큭큭. 프렌이 숨죽여 웃는 게 어깨에 울렸다. 보송보송한 머리칼과 숨소리가 피부에 닿아 간지러웠다. 맞닿은 부분이 따스해서 간지러웠다. 입으로 아무런 말이나 뱉으며 얻었던 안정감이 덜컥 다시 흔들렸다. 뭐라도 말해 침묵을 깨지 않으면. 

"―아, 그리고 뭐랬더라. 생명선이 짧고 굴곡이 많으니 부디 조심 또 조심하라고."

손가락으로 주욱, 손바닥 한가운데를 긁고 내려오며 그리 말한 순간, 아차 싶어졌다. 과연, 굉장히 용하군. 나는 뒤늦게야 사막 한가운데에서 만났던 그 점쟁이 노파에 대해 평을 달리했다. 이왕이면 화를 부르고 말았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가르쳐달라고 물어볼 걸 그랬지. 이미 늦었지만.

프렌은 말이 없었다. 웃음도 없었다. 겨우 찢어낸 줄 알았던 침묵이 도로 무겁게 우리들의 위에 내려앉았다.

"뭐, 뭐. 이런 건 그냥 미신―"

"과연. 여기는 묘하게 짧네."

어떻게든 웃으며 얼버무리려 한 걸 프렌의 말이 막았다. 도로 접어 떨구려던 손에 프렌이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스윽 쓸어내렸다. 조금 전 내 손가락이 지났던 자리였다. 손바닥에 난 금 중에 유독 굵고 짧으면서도 중간중간 뭐에 막히기라도 한 듯 툭툭 다른 잔금이 지나는 곳. 점쟁이 노파가 들여다보며 몇 번이고 끌끌 혀를 차던 곳이었다.

"이게 생명선이라면 말이지."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생명선 끝에 새처럼 앉았다.

"길게 하면 정말 오래 살게 되는 걸까?"

문득 생각났다는 듯 툭 던진 질문은 얼핏 듣기엔 너무도 가벼워, 하마터면 '그런 거 아냐?' 라고 생각없이 대답하고 말 뻔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슬쩍 돌려,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프렌의 눈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은 어디까지고 담담했건만 그 눈에 괸 등불 빛 때문일까, 촉촉한 시선은 한껏 열을 띈 듯 보였다. 차라리 타는 불이라면 분노로 해석할 법도 했건만, 일렁이는 열기는 어디까지고 촉촉했고, 손바닥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은 어디까지고 다정했다. 프렌의 손가락은 뭉툭하게 끊긴 생명선 끝을 몇 번이고 문지르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리 문지르다 보면 언덕이 바람에 깎여 평지가 되고, 강이 바위 위를 흘러 협곡을 만들듯 그 짧은 손금도 좀더 길게 푹 패이기라도 해줄 것처럼. 

"궁금하지 않아, 유리?"

웃음기마저 섞인 속삭임에 어째선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바쨕 들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여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나는 조용히 손을 접었다. 프렌의 손가락은 손바닥 안에서 나비처럼 얌전히 잡혔다. 파닥대는 움직임조차 없이 그저 따스하기만 한 나비였다. 나는 그것을 손 안에 잡은 채 조용히 이불로 된 파도 위에 돌려놓았다. 

"그런 건 미신이야. 프렌."

'그런'게 무엇인지는 입에 담지 않았다. 않은 건지 못 한 건지는―나도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 미신이지."

아주 잠시 틈을 둔 뒤, 프렌은 뭐에서 놓여나기라도 한 듯 웃었다. 프렌도 결국 '그런'게 무엇인지는 입에 담지 않았다. 않은 건지 못 한 건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손에 그어진 금 몇 개가 인생과 운명을 비추는 지도라고 보는 것이 미신이라면, 이미 완성된 지도 위에 선을 덧그린다 하여 무엇이 바뀌리라 믿는 것 또한 미신이건만. 나는 그 중 무엇을 딱 집어 어리석다 말할 수가 없었다. 프렌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마지막까지 묻지도, 허겁지겁 도망치지도 못한 채로, 나는 결국 그날 해가 뜨기 직전까지 그 침대에서 천장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꼭 쥔 주먹 안에서 꼬물대며 손바닥을 긁어내리는 프렌의 손가락을 느끼면서. 그 손길에 차라리 손바닥이 갈라져 새 물길이 터지기라도 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사실 이쯤 되면 유리로웰이 아니라 내가 문제인 거 아닐까 싶어요. 



Ryurell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