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님의 리퀘로 쓴 츠키카게 글입니다.

주제는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졸업했다가 이후 동창회 같은 곳에서 만나 서로의 마음을 자각하는 츠키카게' 였는데 뭔가 한참 벗어나 버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 이제는 모교라 불러야 할 사랑스러운 학교와의 마지막 순간, 어째선지 무던히도 체육관에 가고 싶어졌다. 어째선지―아니. 나는 잠시 생각해보곤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3년 전, 고교에 들어선 뒤 가장 먼저 달려갔던 곳도 그곳이었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도 그곳이었다. 마침표 또한 거기서 찍어야 할 터였다.


체육관은 텅 비어 있었다. 킁, 하고 작게 코를 울려 보니 약간 가라앉은 먼지 냄새만이 났다. 엄청나게 익숙할 터인 장소가 어째선지 그것만으로도 홱 낯설게 느껴졌다. 에어 살롱 파스 냄새라도 났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언젠가 바보 같은 동기가 떠들곤 했던 말이 하릴없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건 시합을 의미하는 거니까. 내가 있고 싶은, 있어야 할 자리를 나타내는 냄새였으니까. 적어도 그 냄새가 나는 곳에서라면 이런 식으로 엉뚱한 둥지에 들어선 까마귀처럼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할 일은 결코 없었으리라.


익숙할 터인 체육관에서 그렇게 무어라 할 수 없는 초조감에 안절부절 못해하고 있던 중, 문득 뒤에서 그림자가 비춰들었다. 길고 빼족한, 마치 그 주인의 생김새 같은 그림자가.


다리 사이를 지나 빼꼼 고개를 내민 그림자를 보고서야, 나는 내가 왜 떠난 지 한참 되었을 이 둥지에 다시 돌아왔는지를 깨달았다.


*****


"야치, 츠키시마는?"

"운전 중이라고 야마구치 군이 그랬어! 지금 공항에서 바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니까 차 안 막히면 30분 안에 올 거래."

"진짜? 그럼 몇 년 만에 전부 만나게 되겠네!"

"그러게. 이 멤버로 전원 다 모이는 건 얼마만이지?"

"3년……아니, 4년인가? 작년엔 츠키시마 군이 외국에 있었으니……"


삐약삐약. 카게야마 토비오는 제 앞에서 끊임없이 재잘대고 있는 옛 고교 동창들을 보며 어째선지 병아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작고, 샛노랗고 보송보송한 것들. 끊임없이 높은 소리로 지저귀고 있다는 점에서도 딱 맞았다. …입 밖에 꺼냈다간 큰일이 날 테니 말하지는 않겠지만.


"……6년."


카게야마는 작게 웅얼대었다. 타이밍 안 좋게도, 그 때에 맞추어 딱 두 사람의 지저귐이 멈추었기에 본래대로라면 아무 일 없이 묻혔을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꽤 크게 울리고 말았다. 두 동창의 시선이 홱 자신에게 쏠리는 걸 보고 카게야마는 칫, 하고 혀를 찼다. 저 놈들이 재잘대는 소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목소리 크기 조절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엥? 뭐야, 카게야마. 자는 거 아니었어?"

"까불지. 그렇게 떠드는데 잘 수 있겠냐. …적어도 6년은 다 같이 못 만났다고 했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는데?"

"……"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아차. 이렇게 말을 하면 그 이유를 물어들 올 것이 뻔하건만. 어째서 자신은 쓸데없이 입을 열었던가.


"……졸업식 날 이후로 못 만났던 사람이 있으니까."


카게야마의 뇌리에 졸업식 날의, 그 써늘하게 추웠던 체육관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체육관을 춥다고 느꼈던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정말로 별 것 아니었는데, 6년이 지났음에도 그 때 교복 너머로 느꼈던 한기만이 묘하게 지금도 생생했다.


"아, 그러고 보니……카게야마 군이랑 츠키시마 군은 졸업하고 한 번도 동창회에 같이 온 적 없었구나."


손을 꼽아 몇 번 헤아리는가 싶더니, 야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혹시 너희 싸우기라도 했냐? 히나타가 시선으로 그렇게 물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안 싸웠어. 졸업식 끝나고 체육관에 가 있었는데 어째선지 그 녀석이 찾아와서 조금 이야기했을 뿐이야."

"정말로?"


히나타가 불안한 듯이 야치 쪽을 흘끔거리며 물었다. 그야, 졸업할 때까지 얼굴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던 게 일상다반사였으니, 못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정말로."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일이었으니 그 때 했던 대화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자신도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별 일 없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졸업 직전까지도 그와 자신은 뭘 하건 방향이 달라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으니까. 드물게도 별 일 없이 헤어졌던 그 날의 일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아, 하지만……"


히나타와 야치의 몸이 카게야마의 말에 움찔했다. 마치 겁 먹은 작은 동물 같은 움직임이었다. 저런 거 어디서 봤는데. 오이를 보고 푱 뛰어오르는 고양이였던가. 카게야마는 추억 속, 작은 거스러미처럼 툭 걸리는 부분을 입에 담았다.


"뭔가, 저주 비슷한 걸 걸었던 것 같은데. 그 녀석."

"뭐가 안 싸웠다는 거야?! 저주라니, 그거 완전 싸운 거잖아!"

"그러니까, 안 싸웠대도. 그건 확실해. 안 그럼 그 머리 좋은 놈이 싸운 놈 있는 데에 오려고 하겠냐?"

"그건 그렇지만……"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주욱 내밀면서도 히나타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하릴없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시간이 꽤 흘러, 두 사람이 오기로 한 시간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 저주는 뭐였더라.


카게야마는 시선만을 들어 문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미리 시켜두었던 우롱차의 얼음이 거의 다 녹아가고 있었지만, 거기에 손을 댈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술집의 시곗바늘은 똑딱대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옆으로 흐르고 있었다. 주르륵 떨어지는 모래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의 끝을 향한 카운트다운.


어쩐지 한참 뛴 다음처럼 고동이 벅찼다.


*****


"……딱히 일부러 피한 건 아닌데 말이지."

"그거, 몇 번째 말하는 줄 알아?"


운전대를 잡은 소꿉친구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며 츠키시마 케이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예전에는, 아니 평소에는 포지션이 반대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안절부절 못해하며 변명 비슷한 것을 늘어놓는 게 야마구치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게 자신이었다.


"응, 뭐, 츳키가 카게야마를 일부러 피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어. 일정이 안 맞았지. 괴멸적으로."


괴멸적, 괴멸적이라. 츠키시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외에 이 빌어먹을 엇갈림을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말은 없으리라.


첫 해에는 갑작스레 나와 버린 리포트, 두 번째 해에는 카게야마의 해외 전지훈련, 세 번째 해에는 취직 준비, 네 번째 해에는 카게야마의 국가대표 발탁―모두가 술집에 모여 울며 웃으며 경기를 관람했다―다섯 번째 해에는 해외 출장. 심지어 예전에 카게야마가 전지훈련으로 나갔던 곳과 똑같은 나라였다, 제기랄.

그리고 여섯 번째 해.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갑작스레 잡힌 해외 출장 일정을 보며 이제는 슬슬 뭔가 액이라도 낀 게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뭔가 운명적인 것이 있어서, 지금은 둘이 만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고.


공항에 내릴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전부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들 이야기했으니까. 이대로라면 너무 아쉽잖아."


그래서 동창회 날짜를 옮기고, 츠키시마가 돌아올 비행기 편에 맞추어 공항에 마중까지 나왔노라고, 여전히 스물 갓 넘은 듯한 얼굴의 소꿉친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슬슬 츳키가 저주 운운하면서 의미 모를 소리 하는 거 들어주기도 힘들다고. 졸업식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편해져도 괜찮지 않아?"

"……"


츠키시마는 말없이 가로등 불빛이 유성처럼 흐르는 도로로 시선을 돌렸다. 이젠 편해져도 괜찮다니, 무슨 불치의 병자에게 하는 것 같은 말을 하곤 말야.


밖은 이미 어두워진 지도 한참이 지났건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에 지금도 6년 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고운 먼지가 반짝이는 체육관 안에서 한 줄기 하얀 햇빛을 받고 있던 소년의 모습이.


그가 거기에 있을 거란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배구밖에는 모르는 바보니까. 오히려 거기에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그래서 찾아갔다. 어째서, 라고 묻는다면 지금도 제대로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궁금했다. 그가 어떤 눈으로 자신이 떠날 둥지를 바라볼지가. 끝난 것, 떠날 것. 이미 흡수가 끝난 먹이―더는 용무가 없는 것.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


체육관에 서 있던 카게야마는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츠키시마가 미리 했던 어떤 예상에도 그런 얼굴은 없었다. 그 얼굴이, 츠키시마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급격히 변했다. 3년간 지겨울 정도로 보았던 제왕의 얼굴. 신물이 나게 싫으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넋 놓고 보기를 멈추질 못했던 그 얼굴로.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카게야마는 쓰게 웃으며 커다란 꽃다발로 제 허벅지를 툭툭 쳤다. 제 손에 들린 게 어색해 견딜 수 없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그도 그러하리라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저 손에 저런 꽃다발은 어울리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저 혼자서 뭘 한참을 생각하는가 싶더니 뭐, 그런가.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졸업식이니까……너도 그럴 수도 있겠지.』


한참을 그렇게 꽃다발을 이리저리 휘적이는가 싶더니, 카게야마는 아, 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제 와서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이었다.


『거, 뭐냐. 졸업 축하한다.』

『그걸 이제 와서 말해?』


기가 막혀 웃음마저 나왔다. 졸업식이 끝난 지도 한 시간이 다 되어 가건만, 이제 와서 졸업 축하 인사라니. 그제야 제가 이상한 짓을 했단 걸 알았는지, 카게야마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투덜거렸다.


『할 수 없잖아. 그럼 뭘 말하라는 거야.』

『글쎄? 평소에 하던 대로 바보 같은 말이라도 하면 어때?』

『…넌 진짜 마지막 날까지 변함이 없네.』

『누구 씨랑은 다르게 졸업식이라고 질질 짤 정도로 어린애가 아니니까.』

『안 짰거든?!』


일순 울컥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카게야마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라, 설마 진짜로 우는 건가. 이건 예상 못 했는데. 그냥, 한 번쯤 더―내일도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쓸데없는 말다툼이나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츠키시마가 덜컥 불안해져 카게야마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을 때였다.


『……즐거웠지.』


툭, 하고 가볍고 건조한 말이 떨어졌다.

쾅, 하고 무겁고 아픈 말이 떨어졌다.


무신경한 제왕 같으니, 츠키시마는 혀를 찼다. 이 녀석은 그냥 마지막 날이니 그냥 무난한 인삿말이나 던지자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리라. 그 말이 듣는 사람에겐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조차 못 하고는.


『너랑도 많이 싸우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만 둬.』

『뭐?』

『멋대로 끝내지 마. 정리하지 마. 흡수해버리지 마. 소화하지 말라고!!』


나를, 내, 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마음을. 멋대로 온화하게 웃으며 끝내지 마.

아, 그랬다. 카게야마가 체육관을 어떻게 볼지 알고 싶었다.


끝난 것, 더는 용무가 없는 것, 다 배운 것을 어떻게 볼지를. 거기에 자신을 대입해서 상처받고 싶었다. 자신의, 이 아직도 소화되지 않는 감정을 대입하고 싶었다. 이 녀석은 그런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대체 뭘 궁금해 했냐고 스스로를 비웃고 싶었다. 그리고 이 속의, 대체 뭔지 모를 감정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더랬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미안.』


카게야마는 의외로 순순히 사과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를 터였음에도, 아무런 반발도 없이. 아주 가끔, 이 제왕은 이런 식으로 순순한 면을 보여 츠키시마를 맥 빠지게 하곤 했다. 츠키시마는 피식 웃었다. 확 올랐던 독기가 맥없이 스르르 빠지고 있었다.


『내가 왜 화냈는지 모르지. 너.』


끄덕끄덕. 츠키시마는 재차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럼 숙제야. 임금님.』

『……』

『잊어버리지 마. 내가 왜 화냈는지 알 때까지.』


―아니, 하고 츠키시마는 꽃다발을 꾹 쥐었다. 리본의 철사가 손바닥에 아프게 파고들었다,


『알지 마. 해독하지 마. 공략 끝난 상대로 생각하지 마, 나를. 나는 네게 있어 끝까지 밉살맞고, 생각대로 안 되고,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인 거야.』


손바닥에 파고든 가시, 아프고 짜증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 결코 녹아들어 양분이 될 수 없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겠지, 저 바보. 싶었지만―그게 목적이었으니까. 츠키시마는 만족스레 씨익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뒤로 6년이나 못 만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하잖아……"


그 얼굴을 어떻게 보란 말이야. 츠키시마는 오늘 들어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래도 가기 싫은 건 아니잖아."


제 서브처럼 헐렁헐렁 힘없어 보이지만, 더없이 정확한 야마구치의 한 마디가 확 와서 꽂혔다.


"……그러니까 문제지."


"아, 그래. ―아, 저기. 저 가게랬어."


야마구치가 가리킨 가게 앞에는 언제 연락을 받았는지 야치가 나와 뿅뿅 뛰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손을 내려 뺨을 감쌌다. 에어컨을 한참 받았음에도 어째선지 열이라도 오른 것처럼 그 뺨은 한참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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