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큐 3년. 로시구미, 교토로 상경.

당초의 명칭은 미부로시구미.

초대 국장 세리자와 일파 숙청 이후 신센구미로 개칭.


"그럴 리가. 설마. 저기 있는 건."


검사는 드물게도 혼을 뺀 채로 거리를 달렸다. 자신을 부르는 주변의 소리마저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주변에 펼쳐진 것은 그리운 교토의 거리. 다소 비틀어져 있기는 했지만, 들어서자마자 바로 자신은 이곳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더랬다. 검은 옷. 긴 바지. 양장. 모르는 옷. ―아니, 사실은 영령인지 무언지가 되며 머릿속에 쑤셔넣어진 기억 중에 저런 것이 있는 듯도 했다. 거리 저편에서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갈(喝)하고 있는 남자의 등을 향해 오키타 소지는 정신없이 달렸다.


"히, 히지카타 씨. 히지카타 씨지요?!"

"누구지? ―뭐야. 오키타냐."


모르는 옷을 입은 남자는 슬쩍 시선만을 돌려 그리운 얼굴을 보였다.


"마침 잘 됐군. 너는 오른쪽으로 돌아 공격하도록. ―신센구미. 출격!"


―겐지 원년 6월 5일. 이케다야 사건.

교토 방화를 계획하던 존왕파 낭사들의 음모 저지.

신센구미와 곤도 이사미의 이름이 드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케다야에 돌입한 신선조 대원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기에 일시적으로는 전투 가능한 대원이 둘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

오키타 소지, 첫 각혈.


"뭘 하고 있나, 오키타. 쓰러져 있을 때가 아닐 텐데?"

"……히, 히지카타 씨?"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한 검사의 어깨를 커다란 손이 받치고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하고 묻는 듯한 시선에 남자는 설핏 웃었다.


"논공행상을 따질 필요도 없으니 말이지. 이제는."


꾹, 오키타의 어깨를 받치고 있던 큰 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따뜻한 손이었다. 이상한 일이지. 6월이건만. 가슴 밑에서부터 따스한 것이 꾹 받치고 올라왔다. 이제는 익숙한 각혈의 전조―아니, 조금 다른가. 오키타는 소매로 얼굴을 대강 비벼 닦고는 다시 지면에 섰다.


"잘 버텼다, 오키타. 뒤는 내가 맡도록 하지."


그 말을 듣곤, 오키타는 아주 잠시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케이오 3년, 오키타 소지, 병세의 악화로 인해 전선 이탈.

이로 인해 도바 후시미의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됨.

케이오 4년, 곤도 이사미 참수.

그 2달 뒤 오키타 소지 폐결핵으로 사망.

스승처럼 여기던 곤도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였다 한다.

일설에 따르면, 오키타의 부고를 받은 히지카타는

'가엾게도, 내가 베어주었어야만 했다.' 라고 했다 전해진다.


"일어나라, 오키타. 싸움이다. 장소는 도바 후시미. 일전의 녀석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다."


열에 들떠 멍해진 머리에 어째서인지 그 말만은 똑똑히 들렸다. 검사는 비틀대면서도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아아, 몸이 무겁다. 일어나기 위해 팔에 잠시 몸무게를 실은 것만으로도 팔이 꺾여 휘청거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히지카타의 시선은 열기가 없이 선득했다. 늘 앞서 달려 나가던 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눈. 검을 들고 있을 때와 비슷하지만, 살기는 없는 눈. 오키타는 이 눈을 알고 있었다.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려는 오키타를 말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어요. 더는 괴롭히지 말아요. 이제는 편하게 해 주세요—아아, 그래.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그 모든 말을 무시한 채 오키타만을 보고 있었다. 차게 식은 검날 같은 시선은 그저 오키타의 목덜미에 대어져 있기만 할 뿐 아무리 기다려도 휘둘러질 줄을 몰랐다. 오키타는 밭은 숨을 내뱉었다. 히지카타는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할 셈이냐. 하고 묻고 있었다. 남들이 무어라 하건 관계없어. 너는 어쩔 셈이냐. 너는 정말로 더는 싸울 수 없겠냐―라고. 오키타는 이를 악물었다. 커헉, 쿨럭. 몸에 남은 기운을 쥐어짜자 찌부러진 과실 찌꺼기처럼 각혈도 함께 올라왔다.

하지만, 일어났다.


"피를 토할 기운은 있는 건가. 좋아. 이미 오다 녀석들도 모인 듯하니, 서두르도록 하지."

"아니, 뭐가 좋다는 게냐. 이 바보 같은 놈! 너도 너다! 아픈 아이는 집에서 푹 자지 않으면 안 되는 게야!"


차차가 그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야차같은 기세로 오키타와 히지카타를 추궁해 왔지만, 오키타는 그저 환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차 씨. 하지만―"


아아, 이것은 꿈이로구나. 하고 오키타는 깨달았다. 두 번째이기에 꿀 수 있는, 아주 짧고 덧없는 꿈이리라고.

왜냐하면, 히지카타 토시조는 아주 예전에 저 검날로 이미 한 번 오키타 소지를 베었으니까.


'괜찮아. 내가 이기고 올 테니. 너는 거기서 쉬면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면서도 잔혹한 일격이었다. 그보다 더 아픈 일격을 오키타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리라. 그랬기에 아마 자신은 그 뒤로도 일어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너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어. 더는 벨 수 없어. 더는, 더 이상은. 팔다리에 진흙처럼 달라붙어 오는 상냥한 걱정에 묻혀 오키타 소지는 그대로 질식해 죽었던 것이리라.

히지카타는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베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신센구미 1번대 대장 '오키타 소지'니까요."


검사는 옥빛 하오리를 걸쳤다. 천으로 만든 것이건만 어째서인지 철로 된 갑옷마냥 무거웠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하고 검사는 웃었다. 이미 죽은 몸. 이미 예전에 싸울 수 없게 된 몸이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마스터의 마력이 있었다. 마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여하튼 무언가가 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 이해하고 있으면 될 터였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했다.


―메이지 2년 5월 11일.

신정부군의 하코다테 총공격.

난전 중 히지카타 토시조 총탄에 피격. 절명.

아군의 유탄에 맞았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항복에 완강히 반대하는 히지카타를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쏘았다는 설도 있다.


"하아, 하아―"


히지카타는 무감동한 눈으로 제 가슴에 꽂힌 검을 바라보았다. 검이란 게 이렇게도 쉽게 사람 몸을 관통하는 거였던가. 너무도 정확히 몸을 관통하고 있어, 차라리 재미있을 정도였다. 숨을 쉬려 하자 커헉, 하고 날숨 대신 혈액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오키타는 늘 이런 걸 몸에 달고 싸우고 있었던 건가. 이런 걸 달고―


"여전히 무섭기 그지없는 검이군 그래."

"아, 아―"


히지카타는 제 가슴에 검을 꽂은 자를 내려다보았다. 가슴에나 겨우 올까 싶은 키의, 작달막한 검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벼려낸 철 같은 눈을 한 채 자신을 베러 달려들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오키타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것을 뱉어내고 있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깨달은 듯 떠는 모습이 마치 조금 전까지 무언가에 씌어 있던 사람인 듯 보였다. 아니, 반대인가. 사람 베는 검귀에 오키타 소지가 씌인 건지, 아니면 오키타 소지에 사람 베는 검귀가 씌인 건지. 히지카타는 예전부터 알 수가 없었다. 이 작은 동문은 여하튼 어릴 적부터 검을 잡기만 하면 사람이 달라진 듯 굴었으니까.


"어릴 적부터 네 검이 제대로 보였던 적이 없단 말이지."


"히지카타 씨……! 나는, 나는—"


울상이 된 오키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아아, 역시, 조금 전의—이 가슴에 검을 찔러 넣던 때의 얼굴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앞섶이 빨갛게 젖도록 피를 쏟으면서도 기어코 일어나 하오리를 걸치고, 함께 도바 후시미의 전장으로 향했을 때처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그녀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가끔 망설이게 되곤 했으니까. 더는 안 싸워도 된다고, 뒤에서 승전보를 기다리라며 오키타를 둔 채 전장으로 향하고 말았던 그 때처럼.

아마도 그 때, 자신의 '신센구미'는 그녀와 갈라지고 말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가…너는 네 깃발을 거기에 세운 건가."


하지만, 하지만—


"비록, 무슨 일이 있더라도—나는."


네 입에서 '신센구미는 이제 끝났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신센구미'는 끝나지……않아……!"


오키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히지카타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


대공동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신주의 잔해, 소멸! 특이점 소멸까지 앞으로 수 분!』

『특이점의 소멸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레이시프트를 준비할 테니 모두 가능한 한 한 좌표에 모여 주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땅울림 사이로 튀었다. 주홍빛 머리칼의 소녀는 혀를 찼다. 인리를 수복한 뒤, 핵을 잃은 특이점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건 늘 있는 일이었으니 슬슬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녀는 한순간 놀라고 만 자신을 질책하며 자신의 서번트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무사하지? 레이시프트가 곧 시작되니 빨리 이쪽으로—"


소녀의 외침은 중간에 멎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흔들리는 가운데, 시야 끝에 선명한 옥색의 하오리가 꽃잎처럼 팔랑였다. 오키타는 아직 저편에 있었다. 이제는 혈흔조차 남지 않은 지면에 그림자를 못박힌 듯이. 일순, 심장이 무언가에 콱 하고 붙잡힌 듯 아파 왔다. 소녀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녀는 이 아픔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인류사를 구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이 1년간 수없이 겪어왔던 일이었으므로.


이별의 예감. 지나치게 많이 겪어온 탓에 원망스럽게도 날카롭게 닦인 제6감. 이제는 예감의 영역을 넘어 차라리 미래 예지의 영역에까지 도달한 그것이 몸속에서 아프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오키타. 뭐 하는 거야?! 어서 이쪽으로 와!"


뱀처럼 덩굴처럼 기어올라 저를 잡으려는 체념을 뿌리치고, 칼데아의 마스터는 자신의 서번트를 불렀다. 검사는 조용히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푸른 옷자락은 어지러울 정도로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건만, 그 몸은 얄미울 정도로 흔들림 없이 지면에 서 있었다. 몸이 흔들려 고개를 저은 것이리라고 소녀가 자신을 위로할 수조차 없도록.


"—마스터, 제 주군."


오키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푸른 옷자락이 춤추는 학의 날개처럼 지면에 사뿐 앉았다. 지금껏 본 어떤 춤보다도 한층 아름답다고, 소녀는 울 것 같은 와중에 생각했다.


"불초 오키타 소지, 마스터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공동을 가득 메운 땅울림은 어째서인지 그 한 마디를 덮지 못했다. 아아, 역시. 소녀는 주먹을 꼭 쥐었다.


"제정신이냐? 오키타!"


예언에 가까운 예감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마스터 대신 오키타에게 소리친 것은 노부나가였다.


"작별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게야! 네가 벤 부장을 따라가기라도 하겠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기특한 자였느냐, 네가!"

"너무하네요. —뭐, 예상했던 반응이지만요. 하지만 노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니 입 좀 다물어 주겠어요?"


자, 마스터. 한때 우정을 쌓았던 자의 매도를 가볍게 넘겨버리곤, 검사는 제 주인을 응시했다. 칼날 같은 시선이었다. 그녀의 검처럼, 허투루 넘기는 건 용납되지 않을 터였다.


"히지카타 씨를 따라가려는 거야?"


주먹을 꼭 쥔 채 소녀는 물었다. 떨림은 어느 새 사라져 있었다. 아아, 이게 내 주인이었다. 이곳이 내 깃발을 세울 곳이라 생각했던 이였다. 끊어내려는 와중에도 그것이 사랑스러워, 검사는 빙긋 웃었다.


"네. 저는 그 사람을 두고 갈 수 없어요."

"—어째서! 그래선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는데! 오키타도 알잖아? 여기가 어떤 공간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따라가 봤자 똑같은 시간을 무한히 반복할 뿐이라고!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고.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하고! 오키타는 그래도 좋아?"


아아, 역시 이 사람은 세계를 구한 사람이구나. 제 주인의 말에 검사는 설핏 웃었다. 그녀는 제 전력이 될 만한 수족이 곁을 떠난다는 것보다도 그 행위가 누구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오키타의 선택이 무엇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내 주군이여. 그런 당신이기에 나는 당신에게 검을 맡기고, 함께 싸우리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하지만—마스터.


"그야말로 바라던 바가 아닙니까."

"뭐……?"

"의미를 만들고, 가능성을 구하며, 미래로 이어지는 것—마스터. 그건 산 자의 일입니다. 저는 망령, 오키타 소지의 산 자로서의 생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자입니다."

"하, 하지만. 지금까지는 특이점 수복을 도와줬잖아!"

"그것은 그 왕의 행위가 제가 살았던 시간까지 범하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사람 베는 검귀에 불과한 자가 인류사를 지키는 데에 가세할 수 있었다니, 이 오키타는 마스터 덕에 분에 넘치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남기리라고 바랄 수 있겠습니까."

"——."

"아니, 이것은 거짓말이 되겠군요."


오키타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키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지막에 주인에게 거짓을 고하려 하였어요."


오키타는 빙긋 웃었다. 우는 것 같은 미소였다.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거짓말을 할 때 그녀는 그렇게 웃곤 했던 것일까. 병석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웃고는 했던 것일까.


"줄곧 품어왔던 소원을 그 사람이 이루어 주었습니다. 신센구미 1번대 조장으로서, 너는 계속해서 싸워도 된다고 그 사람이 말해주었어요. 이번에야말로, 닳아 없어질 때까지―아니, 없어진 뒤에도 싸울 수 있도록, 제가 그리 한대도 무엇 하나 달라질 것 없는 영원을 주었어요. 오키타는 그것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조차 잊고 있던 제 소원을, 함께 바라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만나고 말았습니다. 오키타는 어찌 해도 이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탁입니다, 마스터. 검사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소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딱한 자야. 옆에서 노부나가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땅울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선배! 이제 이 좌표는 더 버티지 못해요!』


부디 이쪽으로! 마슈는 숫제 비명처럼 제 마스터를 불렀다.


"……가자, 다들."

"마스터."


노부나가는 슬쩍 소녀의 손을 들여다보곤,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령주의 붉은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녀의 손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움켜쥔 결과이리라. 딱한 자야. —딱한 자들아. 그녀는 한숨을 쉬며 주인의 손목을 힘주어 쥐었다.


"—고마웠어. 오키타."

"…저야말로. 마스터."


등을 돌리고 있어, 검사와 그 주인은 서로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목소리가 마지막까지 시원시원했다는 것만이 검사에겐 위안이 되었다.

다음 순간,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무엇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히지카타는 중얼거렸다. 이길 때까지 영원히 싸워나가겠다고 선언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공간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군은 물론이고 전장도, 싸울 상대조차 없다. 하늘도 땅도―빛조차도 없는 공간에서 그런 걸 바랄 수는 없으리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가끔은 자기 자신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건지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가끔 저 자신이 사라진 게 아닌가 싶어 스스로의 몸을 만져보고 난 뒤 아직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계속 걸어도 무언가에 부딪히진 않을 테니 그건 다행인가. 나중엔 그런, 대책 없이 유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싸워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선 우선 자기 자신의 존재부터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건가."


현학적이다. 야마나미나 이토라면 좋아할 만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생각할 시간만은 잔뜩 있었다. 처음으로 투쟁할 대상이 자기 자신이란 건 나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고, 히지카타는 설핏 웃었다.

그 때였다.


"응……?"


히지카타는 순간 감각으로 가득 찬 세계에 내던져졌다. 마치 깊은 물속에 갑자기 빠진 듯 히지카타의 존재를 감각이 가득 메워 왔다. 감각의 수압에 짓눌려 의식을 잃기 일보 직전에야 그는 저 자신을 되찾았다.


"이, 건—밤. 밤거리. 인가? 묘하게 익숙한 풍경인데—"


지나친 자극에 홧홧하게 맵던 오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제자리를 되찾아갔다. 풀 냄새. 흙 냄새. 땅을 밟는 게다의 감각. 피부에 훅 끼치는 더위. 차게 내리는 습기. 아아, 주변이 어둡단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눈에 밟히는 별빛 조각조차 싸하게 매웠기에, 별빛이 아득히 먼 게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히지카타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며 제가 빠진 세계를 돌아보았다.


"숨소리가 너무 크잖아요, 히지카타 씨. 불량 낭인들이 히지카타 씨 숨소리에 놀라 도망가겠어요."

"……오키타?"


옆에서, 목소리. 머리가 반응하기 전에 입이 멋대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부름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작달막한 검사가 씨익 웃었다. 장난스런 미소였다.


"너, 이 바보가. 대체 어떻게—"

"히지카타 씨. 목소리!"

"어차피 들을 놈들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너, 제 깃발은 여기 있니 어쩌니 같은 소리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이 얼간이야!"

"아—세계선 넘는 발언은 금기라고요! 열심히 추억 고증해서 만들었는데!"


만들어? 히지카타는 입을 딱 벌리곤 주변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엔 벅차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서있는 곳은 히지카타도 잘 아는 곳이었다. 교토의 밤거리. 아마도 계절은 여름. 그리고, 위치는—


"……이케다야."


맙소사. 히지카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키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죽어가던 히지카타 씨 한 명으론 안 되어도, 서번트 둘이 핵이 되면 간단한 고유 결계 정도는 만들 힘이 되는 거겠죠. …뭐, 저도 원리는 잘 모르지만요."


일단 부딪혀 봤는데 한 번에 되었으니, 일단 럭키? 오키타 씨 대승리? 가슴을 쫙 펴곤 의기양양하게 주절대는 어린 동문의 모습에 히지카타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겨우 보내 줬는데 이런 데 도로 기어들어오곤. 난 이제 모른다. 닳아 죽을 때까지 써먹어 주지. 도망치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할복시키고 말 테니 각오하라고."

"하나밖에 없는 대원을 할복시켜서 어쩌려고요…뭐, 바라던 바지만요."


오키타는 씨익 웃었다.


히지카타 씨야말로, 너무 빨리 닳아버리지 말아요. 등 뒤에 툭 던져진 말에 히지카타는 불손하게 웃었다.


"핫,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건방지게."


등 뒤에 따라붙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무던히도 기뻐 히지카타는 저도 모르게 빙긋 웃음지었다. 장난칠 거리를 꾸미는 악동 같은 웃음이었다.


"가자, 오키타. 불량 낭인들을 남김없이 때려잡자고."

"—네!"


이케다야에 다다르기까지, 앞으로 몇 걸음. 주홍색 불이 켜진 여관의 2층을 노려보며, 두 사람은 숨을 죽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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