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이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겁니다!"


같은 과 후배의 흥분한 목소리에 츠키시마 케이는 정신을 차렸다. 


나도 다 됐군. 회의 시간에 딴 생각을 하다니. 다행히도 다들 프레젠테이션에 정신이 팔려 츠키시마가 잠시 정신을 놓았던 건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츠키시마는 얼른 다른 사람들을 따라 회의실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약간 어두컴컴한 회의실 안에서 그곳만이 하얗게 밝았다. …아니, 뭐. 프레젠테이션 중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츠키시마는 프레젠테이션 화면과, 그 앞에 서서 얼굴을 붉힌 채 열변을 토하고 있는 후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늘 느긋하고 어딘가 맹한 후배라고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흥분하기도 하는구나. 츠키시마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후배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지금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아마 주저 없이 '사람 좋은 후배가 돌변하던 점' 이라 답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츠키시마와 마찬가지였던지, 다들 보라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안 보고 그 앞에 선 사람 쪽에 더 집중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 회의가 끝나면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요령을 가르쳐주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설명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내용보다 발표자 쪽이 훨씬 눈에 띄어 버려선 의미가 없으니. 츠키시마가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화면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엥?"


회의 시간인 것조차 잊어버리고 츠키시마는 입을 떡 벌렸다. 다행히도 그 순간 딱 맞추어 모두가 술렁였기에, 회의실 내의 시선이 츠키시마에게 몰리는 일은 없었다.


회의실 앞 모니터에, 절대로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얼굴이 떠 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 일본 배구계의 떠오르는 별이자—츠키시마 케이의 오랜 연인이.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번 신상품 광고의 주요 컨셉은 '아름다운 학창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이며—"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와 함께 보냈던 고교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죽어라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자각하고 나선 좀 다른 의미로 신경전을 벌였던 것 같지만, 어찌되었건 츠키시마가 저 앞의 모니터에 비친 남자와 보냈던 실제 학창 시절은 지금 후배가 역설하고 있는 '아름다운 학창시절'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츠키시마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쥐며 제 앞에 놓인 자료 파일을 들춰 보았다. '2분기 신상품 광고 컨셉'이라 쓰여 있는 자료였다. 이미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기 전에 대강 내용을 파악해 두었던 것이지만, 재차 확인해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야스다 씨. 하지만 카게야마 씨는 스포츠맨이잖아요? 아무리 광고 모델 활동도 하고 있다고 해도…스위츠 광고의 모델로 쓰기엔 너무 , 그…건강한 이미지가 아닐지…"


그래, 저거다. 츠키시마는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마침 열려 있던 기획서의 한 페이지에는 신상품으로 나올 예정인 말차 밀크 초콜릿의 온갖 패키지 디자인이 올라와 있었다. 일본 전통 과자집의 물건을 연상케 하는,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이걸 광고하는 게 카게야마라고? 그 카게야마? 질보다는 양, 기껏 고급 과자점의 케이크를 같이 먹자고 사다 놨더니 츠키시마의 몫까지 홀랑 먹어 버리곤 '두 조각밖에 없길래 넌 다 먹은 줄 알았다'고 뒷머리를 긁적이곤 하는 그 남자가?


말도 안 돼. 이미지가 안 맞아도 정도가 있다. 츠키시마는 신상품의 우아한 이미지와, 카게야마의 평소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곤 그 간극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만류에도 후배의 열의는 꺾일 줄을 몰랐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점이 좋은 거예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제품의 주된 광고 컨셉은 '풋풋한 옛 추억'입니다. 이 사진을 보십시오!"


후배는 기다렸다는 듯 PPT의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회의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 홀로 튄 츠키시마의 목소리는 다행히도 재차 이어진 후배의 목소리에 덮였다.


"카게야마 선수의 고교 시절 사진입니다. 지금과 별로 얼굴이 달라지지 않았지요. 제가 밀고자 하는 이번 광고 내 그의 컨셉은 '성실하고 조금은 요령 없는 학교의 운동부 선배'입니다!"

"……"

"성실하고 요령 없는 운동부 선배가 밸런타인데이 때 받은 초콜릿의 답례를 하며 수줍게 고백해 오는, 풋풋한 청춘의 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남기는 거죠. 화이트데이에 딱 맞춰 나오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화이트 데이 시즌 광고가 넘쳐나는 때보다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츠키시마의 머릿속에 색 바랜 옛 추억의 장소가 문득 떠올랐다. 카라스노 고등학교의 체육관 뒤. 오래된 학교답게 커다란 나무가 몇 개나 서 있고, 여름의 한낮이 되면 나뭇잎이 빛을 걸러 옅은 녹색의 얼룩을 피부 위에, 흰 셔츠 위에 점점이 찍곤 하던 곳. 가끔씩 남의 눈을 피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마다 학교의 학생들이 꼭 찾곤 하던 곳이었다. 당연히, 고백 장소로도 주로 쓰였다. 딱히 여기서 고백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전설 같은 건 없었지만, 적당히 분위기 있고 적당히 한적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곳의 나무들이 지켜본 고백의 수는 끊이지 않고 늘어만 갔다. 2학년 중순쯤엔 뒷모습만 봐도 아, 저건 고백하려는 거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쌓였다. 가끔은 츠키시마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될 때도 있었다. 사랑스럽게 볼을 붉힌 채, 혹은 불안에 벌벌 떨며 제 앞에 선 상대를 마주 보면서 츠키시마는 늘 그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 좋아하는 선배와 교정 뒤에서 마주 서 있는 거죠."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갑자기 훅, 하고 신기루처럼 츠키시마의 눈앞에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되살아난 추억 속, 어째서인지 제 앞에 서 있는 건 카게야마였다.

이 사기꾼. 너 실제로는 그런 적 없잖아. 츠키시마는 쓰게 웃었다.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선배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모니터 앞의 후배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웅변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볼살이 통통하고, 체구도 가는 카게야마가 새 부리처럼 입술을 비죽이며 자신에게 뭔가를 내밀고 있었다. 끽해야 사카노시타 상점에서 파는 티롤 초콜릿이나 작은 사탕 같은 것이겠지. 코웃음을 치면서도 입가에 슬몃 미소가 번졌다.


"……좋은데."


츠키시마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거기에 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지, 주변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좋다고 한 건 저 기획이 아니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회의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히 끝났다.


*****


"……그래서?"


츠키시마의 말을 다 들은 카게야마가 기가 막히다는 듯 물어 왔다.


"그 회의랑 지금 네가 내밀고 있는 이거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데?"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츠키시마의 손에 들린 것과 츠키시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츠키시마의 손에는 말차 양갱과, 검은 가쿠란 교복이 들려 있었다. 꽤 사용감이 있는 것을 보아, 누군가가 쓰던 것이다.


"내 옛날 교복이야. 이거라면 사이즈가 맞겠지."

"……"


카게야마가 뭐라 묻기도 전에 츠키시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꺼림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저 표정을 보니 정답인 모양이었다. 넌 대체 어떻게 내가 말도 안 했는데 그걸 알았냐. 요괴 같은 놈. 뭐 대강 이런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지. 츠키시마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넌 생각하는 게 너무 얼굴에 잘 드러난단 말이야. 이 귀여운 제왕님아―학창 시절이었다면 그렇게 한두 마디 덧붙이기라도 했겠지만, 그리 했다간 기다리는 건 말다툼뿐이란 걸 츠키시마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 한 번 해보자고.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학교까진 못 가겠지만, 코스프레 플레이 같은 거 처음부터 밖에서 하기도 부끄러울 거고. 예행 연습 치고."

"코스프레 플레이라고 하지 마! 너 요새 왜 이렇게 아저씨 같아졌는데?!"

"뭐, 실제로 한 걸음만 더 가면 아저씨고 말이지?"


어차피 애들 보기엔 스물 넘으면 다 아저씨라고. 츠키시마는 어깨를 으쓱이며 픽 웃었다. 스스로를 '아저씨'라고 평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OB들이 문득 떠올랐다. 당시 코치의 친구들이었던 그들은 나이로만 치면 딱 지금의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카게야마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뭐라 입 속으로 웅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렇게 얼굴 찌푸리면 정말 아저씨가 될 날이 가까워질걸. 충고라도 해줄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니었다.


"너, 내가 이거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쩔 건데."


아무래도 지기 싫었는지, 카게야마는 여전히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로 툴툴거렸다.


"…그럼 할 수 없는 거고."


잠시의 간격을 두긴 했지만, 츠키시마는 거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할 수 없는 거다. 아주 잠시,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학창 시절에 남긴, 아주 작은 아쉬움이 문득 뇌리를 스치기는 했지만. 어차피 카게야마는 지금 자신의 곁에 있고, 둘 사이에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그러니 이건 장난.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장난. 그러니 아쉬워할 것도 없다.


그럴 터인데, 어째서인지 카게야마는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조금 전보다 한층 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카게야마…? 아니, 네가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는."

"누가 안 한대?"


카게야마는 어째서인지 버럭 화를 내며 츠키시마의 손에서 가쿠란 윗도리와 녹차맛 양갱을 확 뺏었다. 그는 투덜대며 츠키시마의 옛 교복에 팔을 꿰더니, '대체 왜 이렇게 가늘어?' '팔 길이 남아. 재수없어!' 등의 불만을 늘어놓으며 꾸무럭꾸무럭 옷을 입었다. 단추는 채우려 몇 번을 악전고투했지만 결국 가슴이 낀다고 앞을 연 채로 두었다. 


…아, 재수 없어. 근육 바보 재수 없어. 썩어도 일본 배구의 희망으로 불리는 현역 선수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배구를 그만둔-게다가 현역일 때에도 근육량은 그닥이었던 자신의 몸을 비교해 봤자 허무해질 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여즉 옛 호승심이 남아 있었던지, 문득 울컥 하고 짜증이 치밀어 오르려다 말았다.


카게야마는 그리 투덜대며 옷을 입었던 것 치곤, 오랜만에 걸친 교복이 신기했던지 한참을 눈을 반짝이며 몸 이리저리를 둘러보거니, 소매를 들어 보거니 했다. 옷소매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으려 할 때엔 아무리 그래도 부끄러워 제지했지만.


"먼지 냄새 날 옷의 뭐가 좋다고 냄새를 맡아."

"딱히? 냄새 의식해본 적은 없는데 네 옷…뭔가 느낌이 달라. 묘하네."

"섬유유연제 냄새겠지!"


자, 그것보다도 이거! 츠키시마는 어쩐지 얼굴에서 확 불이 날 것 같아져, 애써 화제를 돌리며 카게야마에게 녹차 양갱을 내밀었다. 퇴근하는 길에 일부러 백화점 지하에 들러 산 고급 양갱이었다. 카게야마가 준다면 역시 화과자 쪽이겠지-하고 멋대로 생각한 결과였다. 제가 생각해도 조금 기분 나쁜 망상이다 싶긴 했지만, 괜찮잖아. 연인에게 이 정도 꿈은 꿔도 좋잖아. 어쩐지 단정한 이미지가 카게야마답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츠키시마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그것을 멀뚱히 들여다보았다. 말간 유리 같은 눈에 제 얄팍한 망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일 것 같아, 츠키시마는 내심 초조해졌다.


"뭐해, 제왕님? 화이트데이 답례, 주는 것 아니었어?"


그냥 장난을 치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갔다. 그냥 카게야마가 교복을, 그것도 상의만을 걸쳤을 뿐이고, 자신은 여전히 양복 차림이었는데도. 츠키시마는 어째선지 정말 그 때로 되돌아가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삐딱하고, 만사에 여유가 없어 사랑하는 데에마저도 빼족했던 그 때의 자신으로.


정말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연인의 옛 별명 때문인지도 몰랐다. 카게야마는 '그거 하지 말라니까.' 하고, 마찬가지로 그 때로 되돌아간 듯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대었다. 물론 그 때에 비하면 꽤 둥글어진 태도였지만. 그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벅벅 긁고는 츠키시마에게서 양갱을 받아들었다.


"…『케이크 맛있게 잘 먹었어.』"


다소 뻣뻣하게, 시선조차 제대로 못 맞춘 채, 카게야마가 퉁명스레 웅얼대었다.


"……『두 조각 다 먹은 건 미안했고, 넌 벌써 다 먹은 줄 알았지.』"


이거, 사과의 뜻. 카게야마는 여전히 허공에 펼쳐진 채였던 츠키시마의 손에 툭, 하고 양갱을 떨어트렸다. 체온이 옮아 따뜻했다. 아마 츠키시마 자신의 체온이었겠지만, 그게 바보처럼 기뻤다. 츠키시마는 픽 웃었다. 웃으려고 했다. 예전처럼 좀 얄미운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그게 어째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감사가 아니라 사과냐고."

"줘도 불만이야!"

"은근슬쩍 안 했던 사과 몰아서 하지 말고. 따지고 보면 이것도 내가 사온 거잖아."

"뭐야. 네가 하라고 한 거잖아! 그러니까 줘도―"


막 나오려 했던 카게야마의 말은 츠키시마의 입술에 찌부러져 그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툭, 하고 바닥에 양갱이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케이크가 아니라 다행이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산 건 아니었지만. 머리 한 구석으로 그런, 아무래도 좋을 생각을 하며, 츠키시마는 제 목 뒤에 둘러져 온 카게야마의 팔에 볼을 부볐다.


"……너 표정 이상해. 아까도 그렇고."

"그런가? 제왕님에게 지적당하다니, 나도 끝이네."

"진지하게 말하는데 까불지."


카게야마는 제 허리에 둘러져 오는 츠키시마의 손을 찰싹 치고는 폭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받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너 가끔 되게 바보 같아."

"……아닌 줄 알았지."


그런 줄도 몰랐어.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가만히 기대며 조금 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때, 널 불러내서 그 앞에 서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어. 내 앞에 서서 고백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지. 너랑 내가 거기서 그랬으면 당장 학교에 이상한 소문 났을 테니까, 뭐 어차피 못 했겠지만."


나는 그게 이렇게 아쉬웠나 봐. 이제 와서 이렇게 아릿할 정도로.

확실히, 이건 바보 같다. 츠키시마는 쿡쿡 웃었고, 카게야마는 재차 한숨을 쉬었다.


"……다음에 진짜로 사올게. 해외 과자 뭐가 좋아?"

"너 다음에 가는 데 이태리잖아. 말도 못하면서 무리하지 말고."

"영어 간단한 건 할 줄 알거든?!"

"그 대신, 나랑 같이 케이크 집에 가자."


시간 신경쓰지 않고, 너라면 뭘 좋아할지를 한참 생각해서 고른 케이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름 삼켜버린 뒤, 눈을 빛내는 너를 볼 수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사실, 이전에도 그걸 노린 거였지만-그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케이크 집에서 바로 나온 거라면, 반응을 못 보고 넘어가 버린다거나,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알 수 없는 꼬부랑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너를 추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것도 말할 생각은 없지만.


카게야마는 멀뚱히 츠키시마를 바라보고는 '그러니까, 너 가끔 되게 이상한 표정 짓는다니까.' 하고 툴툴댄 뒤—고개를 끄덕였다. 뭘 그렇게 쉬운 걸 가지고 고민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아, 그리고 역시 이 기획은 모델 바꾸자고 해야겠어. 새삼 딴 놈들이 이거 보는 거 생각하니 열 받아."

"……너 가끔 되게 알기 쉽게 무거운 거 알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게야마는 제 어깨에 얹힌 꺽다리 연인의 머리를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Ryurell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