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인 세션 '낙원'에 플레이어 2 루드거 윌 크루스니크로 참여해 굿엔드를 보고 왔습니다.


초보자들 데리고 진행해주신 마스터 슈리아님과 NPC 역할 해주신 휘연님, 그리고 갑작스런 파트너 요청에 응해주신 미르엔님께 감사드립니다. 짧게나마 세션을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아래 이어지는 글은 인세인 시나리오 '낙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RPG 게임 테일즈 오브 엑실리아 2의 2차탁으로 진행하였으므로, 해당 작품을 모르시는 분께서는 이해가 다소 힘드실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스포일러 원치 않으시는 분께서는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아~잘 먹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유리우스는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공에 흰 입김이 퐁, 하고 흘러나왔다. 기온의 차 때문에 만들어진 수증기의 집합.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루드거는 그 입김을 손으로 만지면 복슬복슬하고 따스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제 옆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애완 고양이의 털가죽처럼. 하릴없는 상상에 조금 유쾌해져, 루드거는 키득키득 웃었다. 


두 사람이 식사를 끝내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지, 점원이 빠르게 그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타이밍도 좋지. 루드거는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저 또한 식당에서 일하는 몸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을까. 언뜻 보기엔 그냥 기분 좋을 뿐인 그 서비스가 그에게는 신기에 가까운 뭔가로 보였다. 점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 두개와, 넓적한 도기 접시 하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발소리도 없이 가 버렸다. 향기로운 김이 그 뒷모습이 일으키는 바람에 섞여 올라왔다. 루드거는 흘긋 머그컵을 들여다보았다. 


식후 음료로 미리 시켜둔 커피였다. 샷을 하나 더 넣은 블랙 커피 한 잔과 우유를 많이 넣은 라떼 하나. 옆의 도기 그릇에는 아마도 루루를 위해 준비한 듯, 미지근한 해산물 수프가 들어 있었다. 루루를 위한 음식까지는 주문한 적이 없었는데. 올 때마다 섬세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드는 가게였다. 두 사람이 이 도시를 찾을 때마다 꼭 들르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뭐,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음식이 맛있다는 점이었지만. 일단은 요리사로서 그 점은 양보할 수 없었다. 루드거는 유리우스에게 블랙 커피를 건네며 그 쪽을 흘긋 보았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그득 차 있던 스튜 그릇이 지금은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늘 느끼는 거긴 하지만, 형은 정말 맛있게 먹는단 말이지. 만드는 사람으로서 보람이 느껴져서 좋아."


이번 건 내가 만든 게 아니지만 말이지. 작게 덧붙이며 어깨를 으쓱하자, 유리우스는 멋적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확실히 맛은 있었지만, 루드거가 만든 요리만큼은 아니야."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너무 안 그래도 돼. 딱히 내가 만든 게 세계 최고였으면 좋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하니까. …조금 분하지만, 이런 요리는 아직 못 만들고."


루드거는 짐짓 텅 빈 스튜 그릇을 흘겨보았다. 호수에서 잡은 온갖 생선을 호쾌하게 넣어 끓인 듯한 스튜는 신기할 정도로 깊은 맛을 내고 있었다. 산지의 힘일까, 기술의 힘일까. 아마도 둘 다겠지. 생선 요리에 그리 능숙하지 못한 편인 루드거로서는 여하튼 부러울 따름이었다. 언젠가는 이것보다 더 맛있는 생선 요리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그냥 형이 맛있게 먹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을 뿐이야."

"……루드거."


유리우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드럽게 웃었다. 눈썹을 팔자로 내린, 어딘가 곤란한 듯한 웃음이었다. 요새 들어 자주 보게 된 표정이었다. 유리우스가 테이블 너머에서 손을 뻗어 왔다. 늘 밖에 나갈 때에는 끼고 다니곤 하던 검은 장갑조차 지금은 없었다. 

-맨손. 루드거는 형의 두터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밑에는 루드거가 어릴 적 잘못해서 유리우스에게 입힌 화상 흉터가 있었다. 유리우스는 몇 번이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긴 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검은 장갑을 그 위에 끼는 것으로 루드거의 죄책감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루드거는 제 뺨 앞까지 내밀어진 그 손을 조용히 바라보다, 가만히 거기에 얼굴을 대었다. 겨울 호수의 바람을 맞아 차게 식은 뺨에, 유리우스의 체온이 잔잔히 옮아 갔다. 루드거는 손을 들어 제 뺨 위에 얹힌 형의 손에 제 손을 얹었다. 형의 손과는 다르게, 조금 끝이 찬 손이다. 이래서야 제가 형의 체온을 욕심껏 뺏는 꼴이 되는 것도 같았지만, 유리우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손을 뺄 생각도 전혀 없어 보였다. 


"……딱히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거 아닌데."

"알아. 그냥 내가 루드거에게 이러고 싶었을 뿐이야."

"……응."


등 뒤에 아주 조금, 시선이 느껴졌다. 가게 점원의 시선이리라. 최대한의 자제심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이는 이, 상당히 묘할 터인 광경을 보면서도 최선을 다해 못 본 척 하고 있었다. …역시 좋은 가게였다. 뭐, 본대도 이제는 아무렴 어쩌랴 싶긴 했지만. 루드거는 유리우스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쿡쿡 웃었다.  유리우스의 커다란 손은 손가락을 펴자 루드거의 얼굴을 반쯤 뒤덮었다. 이래선 숨이 닿는데. 아주 잠시 그리 생각했지만, 이걸 입에 내어 보았자 돌아오는 대답이 무엇일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번 들었으니까. 바로 조금 전에도. 


여름, 그들의 일상을 송두리채 뒤집어 버렸던 '그 사건' 이후로, 유리우스는 틈만 나면 이런 식으로 루드거를 어루만졌다. 부끄러워질 정도로 응시하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손을 뻗어 정말로 거기에 있는지를 만져서 확인하려 들었다. 장갑을 끼면 감각이 둔해지니까. 언젠가 유리우스는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침대에서 루드거를 꼭 가슴에 껴안은 채였다. 잠에서 깨면 루드거가 어디로 가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루드거는-그 팔을 뿌리칠 생각도, 품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없이 그저 뺨을 유리우스의 가슴에 대고 있었을 뿐이다. 귓가에 유리우스의 심장 고동이 둔탁하게 울리는 걸 곱씹으며. 


사이 좋은 형제니까, 라고 얼버무릴 수 있는 선은 이미 넘은지 오래였다. 선을 넘은 그 앞에 다른 뭔가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조금 더 자주 만지게 되었고, 더 꼭 포옹하게 되었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저 조금 더 확실히 서로가 눈앞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만지는 것 뿐이었다. 목소리만으로는, 눈에 담기는 모습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가끔은 등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묘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 분명 형제라고 했던 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노골적으로 가까워지면 그리 보이기도 할 터였다. 여러 모로 안 닮은 형제이기도 했으니, 묘한 시선이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신경 쓰여?"


흘긋, 루드거의 등 뒤를 넘겨보며 유리우스가 속삭였다. 점원의 시선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니."


루드거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얼굴 한 쪽에는 호수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나머지 한 쪽에는 소중한 사람의 체온이 있었다. 더는 무엇도 바랄 게 없을, 낙원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좋은데, 빠져나가긴 아깝잖아."


루드거는 유리우스의 손을 꼭 쥐며 속삭였다.

유리우스는 여전히 때때로 악몽을 꾸곤 했다.

루드거는 때때로 구름이 갈라질 때마다 움찔하곤 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리우스는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니까, 좀 더 이러고 있자. 형."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두 사람은 더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







"휴우. 이걸로 내일까지는 넉넉히 먹으려나? 유리우스는 오늘 일찍 퇴근한다고 했으니……"


덤으로 받은 마지막 토마토를 종이 봉투에 어찌어찌 넣은 뒤, 루드거는 한숨을 쉬며 광장의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오후 6시 30분. 지금 회사 앞 건물까지 가면 형과 엇갈리게 될까.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라? 저기 있는 건……"


인파 사이로 언뜻 엿보인 하얀 가운에, 루드거의 표정이 환해졌다. 


"쥬드!"

"아, 루드거."

"오랜만이네. 밥은 제대로 먹고 있어?"


흑갈색 더벅머리를 한 소년은 루드거의 말에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언제나처럼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네. 루드거. 유리우스는 잘 지내?"

"늘 똑같지 뭐. 벌써 여름인데도 장갑을 안 벗어서…슬슬 습진약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니까. -아."


큰일났다. 시간 늦겠어. 루드거는 광장의 시계를 몇 번 바라보곤, 쥬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안, 쥬드. 유리우스 마중 나간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 내가 불러세웠는데, 정말로 미안해!"

"괜찮아. -소중한 형이잖아?"

"소중한, 응. 뭐 그건 그렇지만. 새삼 말하니 간지럽네-어라, 쥬드?"


쥬드는 영문을 모를 말만을 남기곤, 어느새 인파 사이로 사라져 있었다. 어쩐지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 되어, 루드거는 두어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왜 쥬드랑 못 만났더라?"


딱히 싸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지. 몇 번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마지막으로 쥬드를 만났던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뭐, 어차피 피차 직장 일이 바빠서 그런 거였겠지만. 조만간 한 번 집으로 초대해서 밥이라도 같이 먹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정말 덥네……유리우스는 괜찮으려나."


오늘은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들고 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행복하게 주워섬기며, 루드거 윌 크루스니크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의 형이 근무하는 빌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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