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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켄]Fate AU 2

시하님(@SIHAST)이 준 리퀘입니다.


기본 설정은 앞편과 동일합니다.

쿠로오 시점.

사실 이 뒤에 데미 서번트라 마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마력충전을 해야 하는 쿠로켄 콤비를 망상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끊었습니다;3

그나저나 쿠로오가 서번트라면 클래스는 뭘까요. 캐스터일까요, 역시.

FHQ 설정도 있고, 진지작성 스킬로 최강의 요새를 만들어놓고 들어오는 놈들을 독니로 콱☆ 하고.




이렇게 큰 집이었던가.
쿠로오는 눈앞에 높이 펼쳐진 덩굴담장을 보며 생각했다.

어릴 적에도 가끔 놀러오고 말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엔 좀 더 들어서기 쉬운 분위기였던 것도 같은데. 쿠로오의 눈앞에 서있는 커다란 서양식 저택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거절하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되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 만큼. 쿠로오가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이 저택이 풍기는 분위기가 어쩐지 오늘 낮에 보았던 켄마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꾹 쥔 채 폭언을 퍼붓던 모습. 그런 주제에 눈은 똑바로 못 쳐다보던 것이 어설펐지만.

“……그런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 찾아올 수가 없잖아.”

쿠로오는 거칠게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저건 자신을 밀어내기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사실과 감정을 떼어내어 냉정하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은밀히 가지고 있던 불안을 그런 식으로 파헤쳐지는 건 역시나 충격이 컸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그대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지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의 켄마는 이상했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결국 쿠로오는 철든 뒤로는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던 켄마의 집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이거, 고장 난 거 맞지?”

쿠로오는 계속해서 누르고 있던 초인종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안쪽에 소리가 울리기는커녕 제대로 눌리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켄마라면 초인종이 고장난대도 ‘별로, 사람도 안 찾아오고, 딱히 불편할 건 없으니까…’ 하고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 근방 사람 중 이 집의 초인종을 누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코즈메 가라는 이름보단 ‘언덕 위의 유령 저택’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할 정도였으니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근방 사정에 익숙지 않은 뜨내기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괴짜뿐이겠지. ―예를 들어, 나 같은.

쿠로오는 몇 번쯤 더 초인종을 눌러 보다가 폭 한숨을 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문은―당연히 잠겨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일 다시 오자는,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대안은 나오자마자 각하되었다. 오기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오늘 안에 해결을 보지 않으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강박관념과도 비슷한 예감이 쿠로오를 움직이고 있었다.

쿠로오는 문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담장 쪽을 빙 둘러 걸었다. 아주 어렸을 적, 언덕 위의 유령 저택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을 때, 망할 개구쟁이였던 당시의 쿠로오 테츠로 군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먼저 느꼈더랬다. 유령 저택에 대한 온갖 무서운 소문들은 경고문이 아니라, 매력적인 탐험 포인트를 알려주는 퀘스트 안내문 같은 것으로 보였다. 탐험을 위한 출입구는 정문이 아닌 다른 곳이어야 하는 법. 지금 생각하면 대체 무슨 깡이냐 싶은 근성으로 큰 저택의 둘레를 이 잡듯이 뒤진 결과, 쿠로오 소년은 덩굴에 가려진 작은 틈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덩굴로 된 담장이었으니 작은 어린애 하나 들어갈 만한 틈은 그 곳 말고도 많았을 텐데도,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그 틈뿐이었다. 켄마에게 나중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묘하게 심각한 얼굴로 ‘눈이 좋은 걸까…’ 라고 중얼거렸지. 확실히 두 눈 다 시력이 1.5는 넘어가기는 하지만.

“……빙고.”

담장을 따라 돌기를 몇 바퀴째, 어쩐지 들어갈 수 있겠다 싶은 틈을 발견했다. 어릴 적과 지금의 쿠로오는 소형견 새끼와 늑대만큼이나 덩치 차이가 날 터였지만,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면 거기로 들어가야 한다는 도전정신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이 정도로 큰 저택이라면 보안 시스템이니 뭐니 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그럴 여력이 있다면 초인종부터 먼저 고치라지, 망할 푸딩 머리. 싶어져서 무시하기로 했다. 세X이고 뭐고 나와 보라고 해. 잡히면 그 자리에서 코즈메 켄마 당장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테다. 추운 가운데 오랜 시간 밖에 나와 있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엔 안 들었다. 쿠로오는 투덜대며 덩굴 담장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덩굴로만 이루어진 하늘과 벽.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통로. 길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두꺼운 담장은 아니었을 텐데도, 한참을 안 끝날 미로를 헤집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만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때에도 틈새로 기어들어가 숨죽여 앞으로 기어가면서 어쩌면 영영 이, 덩굴로만 이루어진 좁은 세계에서 못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을 먹었더랬다. 마지막에는 덩굴이 온몸을 감아오는 착각에 휩싸여 반쯤은 울면서 필사적으로 방향도 모르고 기었었지.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했다. 워낙 특이한 체험이다 보니 누군가에게 말할 일은 없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을 뻔 했던 길고 긴 덩굴길의 끝. 그 때 그가 보았던 것은 고양이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뜬, 작은 덩치의 어린아이였다.

‘……지금 생각해도 낭만적인 연출이었지. 그건.’

확 비쳐드는 햇빛을 등에 받은 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던 어린아이. 어두운 데 한참 있다가 나온 직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엔 이상하게 그 아이가 반짝반짝 눈부셔 보였더랬다. 일순 정말로 그 아이가 납치당한 공주님이나 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당시의 감동은 그야말로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사 이야기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왜 하필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 게 그런 거였을까 싶어 부끄러워지지만.

그 때는 뭐라고 맨 처음으로 말했더라. 자신을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는 켄마에게 손을 내밀며 ‘밖에서 같이 놀자’ 라고 말했던가. 결국 낯선 침입자를 보고 놀란 켄마가 빽 울어버리는 바람에 켄마의 아버지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 켄마는 문 밖에서 부르면 느린 걸음으로나마 밖에 나와 주게 되었다. 당시 귀신 저택의 주인은―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켄마와 꽤 많이 닮은 분위기를 띈 켄마의 아버지는 뭣 때문인지 몇 번이고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켄마가 문 밖으로 나가도록 슬쩍 등을 떠밀어 주곤 했다.

쿠로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굴로 덮쳐드는 덩굴을 걷어내었다. 모험의 끝에 공주와 명예를 얻은 용사는 될 수 없었지만, 대신 손 많이 가는 소꿉친구를 얻었다. 손해 보는 모험은 아니었다고 반쯤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이 나이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가택 침입을 시도해볼 정도로 쿠로오는 그 푸딩 머리의 공주님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몇 번이나 덩굴을 헤치고 걸었을까. 손가락 틈으로 희미하게 빛줄기가 스며들었다. 바깥이 밤임에는 변함없을 터였건만, 정원에 등이라도 켜둔 걸까. 쿠로오는 덩굴길에서 빠져나와, 묘하게 밝은 유령 저택의 정원에 발을 디뎠다.

손목시계가 막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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