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사귀게 된 비상콤비가 물어볼 상대를 잘못 선택한 이야기.

*비상콤비는 어느쪽이 앞뒤인지 생각한 적 없습니다

*쿠로켄 시즈닝이 아주아주 조금 있습니다

*저는 츠키시마에게 원한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괜찮은 놈이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오히려 최악에 가까웠지-그 뒤에도 한동안은 츠키시마의 부록 1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단기간에 몰라볼 정도로 노력해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오는 모습을 본 뒤로는 카게야마도 그 평가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진학반이면서 뻐기지 않는 것도 평가를 달리하게 된 요인 중 하나였다. '뻐기는 놈'의 기준이 츠키시마 케이로 굳어진 건 이미 비밀도 뭣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다름아닌 그 츠키시마 케이와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카게야마는 야마구치에 대한 평가를 하나 수정했다. '괜찮은 놈이지만, 연애운은 더럽게 없음.' 이라고.  히나타의 생각도 비슷했던지,  그는 뭐라 형용키 힘든 표정으로 '야마구치, 대체 왜 그런…'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 되게 의외라는 것 같은 반응이다."

"응? 아니, 딱히 그건 아닌데?"

그,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표정은 한순간에 히나타의 얼굴에서 가셔 버렸다. 너무도 빠른 변화에 조금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배구하는 중이라면 녀석이 얼마나 빠르게 돌발행동을 벌이더라도 그걸 자신이 모르는 일은 없건만. 어쩐지 조금 분해졌다. 그런 카게야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나타는 '그치만 말이지-' 하고 입술을 비죽였다.

"아니, 뭐 예상을 못 했냐면 딱히 그런 건 아니니까. 야마구치, 딱 봐도 츠키시마 좋아하잖아? 그냥 친구라기엔 막 눈에서 하트 빔 나올 것처럼 보고 있고. 오히려 야마구치가 누구 다른 사람이랑 사귄다면 그거에 더 놀랐을걸?"

카게야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말이지이. 조금 전보다 한층 더 길게 늘어진 말끝에 설핏 한숨이 섞였다.

"상대가 그 츠키시마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긴 한숨이 말끝을 가렸다. 딱히 츠키시마에게 원한이 있어 이런 건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냥 좀 껄끄러울 뿐이지.

"역시 네코마 세터에게 묻는 편이 낫지 않아?"

"절대로 싫다고 말했지!? 켄마한테 이런 걸 어떻게 물어봐?"

지금까지 몇 번이고 반복되어왔던 흐름이다. 빙글빙글. 별로 좋아하는 흐름은 아니었다. 시합에서도, 일상 생활에서도. 카게야마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적임자가 없건만, 히나타는 이 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할 정도로 완고해지곤 했다. 네코마의 세터와 그의 연인인 주장-히나타가 닭벼슬 머리라고 부르는-간의 애정사를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야마구치는 괜찮고 네코마 세터는 안 될 이유는 뭔데? 까놓고 말해서, 저쪽 상대가 닭벼슬 머리라면 이쪽은 츠키시마라고?"

"으, 으으으으……"

거기까진 계산하지 못했던지, 히나타가 머리를 움켜잡은 채 신음했다. …조금 불쌍했다. 히나타는 한참동안 반쯤 고장나 있다, 핫 하고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개를 들었다.

"너, 너야말로!! 켄마한테 처음으로 묻는 게 이런 얘기가 돼도 괜찮은 거야? 첫인상이라고??"

"……"

일리 있는 말이었다. 히나타 주제에. 카게야마는 딱히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역시 그 세터에게 처음으로 묻는 건 배구에 관한 질문이길 바랐으니까. 싫긴 하지만, 할 수 없지. 카게야마는 입술을 비죽 내민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히나타의 얼굴이 아주 잠시 환해졌다-다시 어두워졌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재차 바라보게 된 것이겠지. 하여간 표정이 변하는 게 빠르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히나타도 카게야마도 딱히 츠키시마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껄끄러울 뿐. 서로의 사생활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아마 츠키시마 본인이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어디 말해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지들 혼자서 난리냐며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의 두 사람에게 그런,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떠올릴 만한 여유는 없었다. 

육체적 관계까지 상정해 놓은 연애를 시작한 지 어언 3개월-배구만으론 발산하지 못할 젊은 혈기는 바야흐로 폭발하기 직전이었건만, 두 사람은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할지 전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무턱대고 덤벼들었다 피를 볼 뻔했던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상식이고 예절이고 사생활이고 알 게 뭐냐. 바야흐로 세상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조금 착각할 것 같은 십대였다. 주변에 잡을 만한 게 있다면 지푸라기-아니, 상당히 껄끄러운 친구의 사생활이라도 붙잡아야 할 만큼, 어린 두 사람은 몸이 달아 있었다.


*****


"……뭐야. 공부 얘기가 아니었구나."

그게 두 사람의 고백을 들은 야마구치 타다시가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두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볼 게 있다길래 뭔가 어려운 문제라도 있는 건가 긴장했어."

다행이다. 나도 공부는 그렇게까진 자신없으니까. 야마구치는 빙긋 웃으며 들고 있던 노트와 필기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어느 새 이미지가 그렇게 박혀버리고 만 건가. 새삼 부끄러워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얼굴을 붉혔다.  그 와중에 노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호흡이 편해지는 건 또 어째서인지. 

"그래서? 나한테 뭘 묻고 싶은 건데?"

꼴깍. 누구의 목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째선지 세 사람의 간격이 스슥 좁아졌다. 거의 머리가 맞닿을 정도로. 어이쿠 형씨. 소리 높이지 말아. 이리 와 이리. 내가 좋은 물건을 갖고 왔는데 말이야……

"……남자끼리는 어떻게 해?"

법에 저촉되는 물건이라도 거래하는 듯한 분위기가 빈 교실에 흐르는 가운데, 나직한 물음이 툭 튀었다. 야마구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다니, 뭘?"

"……응?"

이번에는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뜰 차례였다. 이런 대답은 예상 못 했는데?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당황해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러고 보면, 가끔 그들 사이에만 통하는 게 남들에겐 안 통해 사람들이 당황하는 때가 있기는 했다. 주로 배구할 때 그러긴 했지만. 설마 이번에도 그런 걸까. 아쉽게도 지금껏 배구만 외길로 보고 살아온 운동 소년들에겐 대체 어느 정도가 남들도 할 만한 수위의 음담패설인지를 가늠할 만한 방법이 없었다. 하물며, 그게 동성끼리의 관계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에, 에이~싫다. 야마구치. 모른 척 하기야? 한다면야 당연히 그거지. 그거!"

"그거?"

그거, 그거…야마구치는 한동안 입속으로 제가 들은 단어를 도륵도륵 굴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히나타의 뺨이 확 붉어졌다. 이것도 최대한 용기를 내서 말한 거였는데. 정말로 직접 입에 담아야 하는가. 그것을. 사전을 뒤질 때 그 비슷한 단어만 보여도 한동안 허둥대곤 하는 사춘기 소년의 감성에 이건 너무도 허들이 높았다. 불 안 붙는 라이터처럼 한참동안 츳, 츳, 하고 바람 새는 소리만 내던 히나타 대신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섹스 말야. 섹스."

"바보야마아아아!! 그런 거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네 목소리가 더 크니까 조용히 해. 그리고 뭐 어때. 우리가 죄짓는 것도 아니고. 네가 제대로 말을 안 하니 야마구치가 못 알아듣는 거-"

"-저기. 미안. 너희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째서였을까. 매우 조용한 물음이었음에도, 두 사람의 대거리가 그 한 마디에 대번에 멈췄다.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야마구치를 바라보았다. 야마구치 타다시는 여전히 엷게 웃고 있었다. 어딘가 곤란하단 듯, 멋적은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 

…어쩐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서로를 흘긋 보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세 사람은 서로 원을 그린 채 둘러앉았다. 얼굴 사이의 거리가 좁아졌다. …불법 거래. 재개.

"혹시나 해서 묻는데, 야마구치. 츠키시마랑 사귀는 거 맞지?"

"응. 그런데?"

"……그거 친구 사이랑 다른 것도 알지?"

"그렇지?"

"그럼 평소엔 둘이서 뭐 해?"

"응? 음…츳키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같이 케이크 먹고, 영화 보고, 스포츠 용품점 가거나 같이 공부하거나…음악 듣거나?"

건전하다. 귀엽군. …뭔가 익숙지 않은 단어가 섞여있었던 것도 같지만. 케이크라거나 뭐라거나 하는.

"……서로의 집에서 자거나 하는 일은?"

이미 상담이라기보다는 청문회에 가까운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그 자리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주 하는 편이려나. 저녁 먹으러 갔다가 시간 늦어지면 오늘은 자고 갈까~하는 식으로. 아무래도 어릴 적만큼 자주는 못 하지만."

제길, 부러운 소꿉친구 놈들.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속으로 득득 이를 갈았다. 보통 사귀는 사이의 두 사람이 몇 단계쯤 가까워져야 겨우 클리어할까 말까 할 법한 짓을 디폴트로 클리어하고 앉았다. 

"……같은 침대에서 잔다거나?"

츠키시마네 집이라면 침대겠지. 반드시 침대일 것이다. 그 녀석이 다다미 바닥에 이불 깔고 잔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놀라울 거야. 근거는 없지만 묘하게 그런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아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겐 못 하지. 츳키가 마르긴 했지만 팔다리 길이가 있는걸. 나는 손님용 이불에서 자. 우리 집에서 잘 때는 반대."

…와아. 와아. 두 사람의 시선이 재차 마주쳤다. -네가 해 봐. 싫어. 네가 해. 젠장, 나보고 어쩌라고? 남들한테 말하는 건 네가 더 잘 하잖아??

"저기…히나타? 카게야마?"

무슨 일 있어? 야마구치가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두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악의라곤 조각도 엿보이지 않는, 꽤 다정한 시선.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놀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단 일말의 의심이 그 순간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제발.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뭔가에 빌고 싶은 기분이 되어, 히나타는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야마구치……그거 말곤 더 없어? 그, 그러니까. 그, 입을 맞춘다거나. 손을 잡는다거나, 그-"

"아, 그러니까 섹" 

"카게야마아아아!!!"

교실에 침묵이 흘렀다. 야마구치는 정말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다, 손가락을 꼼지락대다, 그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대다-겨우 뭔가 알아챈 듯 활짝 웃었다.

"아아, 섹스. 응."

드디어 전해졌다. 히나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로 언어가 다른 두 종족이 처음으로 서로 소통했을 때의 기쁨이 이러할까. 어쩐지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졌다. 

"아하하, 싫다. 두 사람도 참. 츳키가 그런 거 할 리가 없잖아."

안도감이요. 그런 친구도 있었지요. 한 3초쯤 전에 뒈졌지만요. 좋은 친구였어요. 따뜻하고. 서로를 이해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해주었더랬죠. 뒈졌지만요. 히나타는 입을 딱 벌렸다. 히나타만큼은 아니었지만, 카게야마의 반응도 그리 시원치는 않았다. 그 기묘한 위화감을 이해하는 데는 몇 초쯤 더 걸린 것 같았지만. 일말의 구김도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 건 야마구치 뿐이었다.

야마구치는 정말로 밝게 웃고 있었다. 거기엔 일말의 자기비하도 없었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거나 자신이 없다는 등의 불안감도 엿보이지 않았으며, 어떠한 불화의 징조도 엿보이지 않았지만-여하튼 뭔가 이상했다. 아쉽게도 고교생 수준에도 다다르지 못한 두 바보의 빈곤한 어휘력으론 거기까지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뭐, 고교생 수준에 다다랐다 해도 그 기묘한 위화감을 표현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고,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물어볼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 날,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츠키시마 케이에 대한 평가가 아주 조금 수정되었다.

조금 껄끄럽고,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 하고, 아주 조금 재수 없고-아주 조금 불쌍한 연애를 하는 녀석.



츠키시마랑 야마구치는 제대로 서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삵이 철망에 끼어 노는 습성이 있는 것과 비슷하지요. 세상에는 섹스 없이 사귀는 커플도 있고 연애에 꼭 섹스가 동반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여기의 두 사람은 거기에는 안 들어갑니다. 일단은 그런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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