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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갓브라더]어떤 크리스마스에

어벤저스 1 이후 시점. 어벤저스 타워에서 토르와 로키가 함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이실님께 리퀘를 받은 '토르 머리카락에 색색으로 장식하며 인간 리스 만드는 로키'를 주제로 짧게 써보았습니다. 어벤저스 1 이후 시점으로, 로키가 미드가르드에서 자신이 입힌 피해를 복구하고 플러스 알파로 사회봉사도 하다 돌아올 것을 명령받았다는 IF설정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토르는 로키 감시자 겸 아스가르드 대표로 사죄봉사 하러 왔다는 설정. 둘다 어벤저스 타워에 있습니다. 토니 스타크의 위장에 구멍이 뚫리기 일보직전입니다.


*****


"어디 갔나 했더니, 이런 데 있었군."

어벤저스 타워, 한 면이 완전히 불투명 유리로 이루어진 벽면 앞에 로키는 서 있었다. 가벼운 실내복 차림이었다. 아무리 난방이 잘 되었다 해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보기만 해도 추울 법한 광경이었지만, 혹한의 요툰헤임에서 사는 서리 거인이었던 로키도, 강인한 아스가르드인인 토르도 그런 감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토르는 그저 '로키는 꽤 자주 여기에 있는군. 전망대를 좋아하는 걸까.'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토니 스타크가 토르의 속내를 알았다면 '아니, 그 자식은 그냥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걸 즐기는 것뿐이야. 지배자 기분을 내고 싶은 거지.' 하고 딱 잘라 말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는 여기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토르는 자신이 어째서 동생을 찾았는지를 기억해냈다.

"미드가르드는 전 세계적으로 지내는 축일을 맞았다는구나."

"흐응, 그래."

로키는 창밖에서 눈조차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토르의 말에 답했다. 토르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대관식 날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건 이후로 동생은 노골적으로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있었던 일이 일이니만큼 토르도 로키가 살갑게 웃으며 자신을 맞는다면 그걸 더욱 수상히 여기긴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차가울 일은 없지 않은가. 반성의 빛도 하나도 안 보이고. 이래서야 스타크와 다른 어벤저들이 로키를 탐탁치 않게 여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로키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건 그가 마법적인 주박에 묶여 미드가르드인들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은 전혀 할 수 없게 된 상태이고, 감시역으로 토르가 따라붙어 있으며―무엇보다도,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찾기 쉬운 곳에 있어야 가장 빨리 조질(토르는 이 때 닉 퓨리가 실언을 핑계로 진심을 입에 담았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니 불쾌할 법도 하다. 하지만 자업자득 아닌가. 제가 뭘 잘했다고 저렇게 등만 보이며 흥칫핏대고 있단 말인가. 토르는 입술을 비죽인 뒤 척척 걸어 동생의 옆에 섰다. 잘 보니, 로키의 손에는 작은 책이 들려 있었다. 장정으로 보아 미드가르드의 책이다. 조금은 미드가르드에 대해서 배울 생각이 든 걸까. 조금은 기분이 좋아져, 토르는 들고 있던 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쉽게도 너와 나는 여기에서 대기해야 하지만 말이다. 출출할까 보아 먹을 것도 사왔다. 커다란 새의 통구이를 팔더구나. 평소에는 보기 힘든 것이 많아서 재미있어."

"넌 오늘 밖에 나가지 못할 거라고 말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나에 대한 비아냥이신가? 형님."

"왜 남의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냐."

"농담이야. 뭐, 나갈 수 있다고 해도 나갈 생각따윈 없어. 개미들이 우글대는 거리에 직접 나간다니, 생각만 해도 오싹한걸."

"로키."

"네, 네. 하지만 이 높이에서 내려다보면 그렇게 보인다고? 비유적인 표현이잖아. 너무 날 세우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져. 그리고―"

로키는 창가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테이블 위에 들고 있던 책을 놓았다.

"진실로 그들에게 즐거울 날이라면 나는 저 자리에 없는 편이 훨씬 낫겠지."

토르는 로키가 테이블 위에 놓은 책을 슬쩍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풍습. 커다란 글씨로 그리 박힌 책 표지에는 색색으로 장식된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조금 전 로키가 창 너머로 바라보던 것, 그리고 토르가 조금 전 거리를 지나며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씁쓸해 보이는 로키의 표정이 어쩐지 짠해, 토르는 머리를 양 옆으로 짤짤 흔들었다. 미친 게지. 이랬다 속아 낭패를 본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머리 안 감았어? 왜 먹을 걸 앞에 두고 머리를 털지?"

로키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잠시나마 저걸 불쌍하게 여겼던 자신이 한심해졌다. 로키는 킬킬 웃으며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딱 울렸다. 퐁,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술병의 코르크 마개가 저절로 따이고, 어느 새인지 허공에 떠오른 잔에 꼴꼴꼴 내용물이 따라졌다.

"로키."

토르는 눈을 부라렸다. 로키는 미드가르드를 돕기 위한 목적 외에는 이곳에선 극력 마법을 쓰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키는 천연덕스레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오, 토르. 깐깐하게 굴지 좀 말자고. 어차피 눈속임 정도의 마법밖엔 못 쓰고. 나는 형이 나와 함께 조금이라도 즐기기 위해 이걸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면 이 훌륭한 새 구이와 술은 죄수에게 넣어주는 사식 외의 의미는 없었나?"

"……"

여전히 참으로 잘 돌아가는 혀였다. 토르는 로키를 더 추궁하는 대신 입맛을 다시며 칠면조 통구이를 싼 바구니를 열었다. 구수한 냄새가 싸늘한 방을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책에서 읽은 거다만."

탄산이 가볍게 도는 달콤한 술을 한 모금 머금은 뒤, 로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은 이 세계의 신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거라고 하더군."

"생일 축하인가! 거 좋군. 그는 몇 살이지?"

"2천 살쯤이었던가. 형과 별로 차이 안 나지? 보아하니 그이도 술은 좋아하는 모양이더군. 혼인 축제의 물을 전부 포도주로 만든 전적도 있다고 하고."

"호오, 그러냐! 만나면 말이 잘 통할 것 같군. 그럼 좀더 축하해주어야 할 텐데."

다른 어벤저스 멤버들이 들었다가는 뒷목을 잡고 넘어갈 법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축하, 축하라. 작게 중얼대던 로키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축하 장식이라도 달아볼까? 저 밖에 있는 나무처럼 요란한 건 못 하겠지만."

"거 좋구나. 축하의 표시는 화려할수록 좋지."

"그래?" 로키가 얇은 입술을 한껏 양옆으로 끌어올렸다. 토르가 조금이라도 덜 들떠 있었다면, 그래서 물이 전부 포도주로 바뀌어버리는 마법이 얼마나 굉장할지를 상상하며 정신이 팔려있지만 않았다면, 그 표정이 제 술잔의 포도주를 뱀으로 바꿔버리기 직전에 로키가 짓곤 하던 표정과 꼭 닮았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으리라.


*****


"……아직 멀었느냐?"

"좀 기다려 봐. 아직 모양이 덜 잡혔어. …오, 역시 여기엔 붉은 색이 잘 어울리겠군."

로키가 허공에 손을 내밀자 그 손바닥에 조그마한 겨우살이 나무 열매와 노란 나뭇잎이 몇 장 떨어졌다. 토르는 치통 앓는 맹수처럼 끄응 소리를 내며 턱에 손을 괴었다. 좀 가만 있어봐. 위치 바뀌잖아. 찰싹, 하고 로키가 손등을 때렸다. 토르는 재차 잇새로만 으르렁댔다. 아주 어릴 적 이후로 누군가가 제 머리카락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만져대는 건 처음이어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손을 들어 머리를 거칠게 휘젓고 싶었으나, 머리 위치만 조금 바뀌었다고 역정을 내는 로키의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리했다간 약정이고 뭐고 사달을 내려 덤빌 게 분명했다. 토르는 조금 전, 친구(상대방은 동의하지 않았거니와 그 얼굴조차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다고 떠들던 자기 자신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로키. 정말로 미드가르드인들은 이런 식으로 축하를 표하는 것이 맞겠지?"

토르의 길고 풍성한 금빛 머리카락에는 푸른 상록수 가지며 솔방울, 온갖 색의 나뭇잎들과 레이스 리본 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었다. 모두 로키가 마법으로 불러낸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로키는 아스가르드에 있을 때에도 어머니 프리가와 이것저것 의상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 아이였다. 그는 토르의 물음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물론이지. 형도 거리를 지나며 이렇게 생긴 관이 온갖 곳에 걸려있는 걸 보았을 텐데."

……그 말대로였다. 그랬던 것도 같았다. 주로 가게의 문 같은 데에, 가끔은 이것보다도 더욱 화려한 관이 걸려 있었던 것을 토르는 기억해냈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뭐, 머리카락을 상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이리도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동생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무엇을 더 화려하게 장식해도 형의 머리카락 쪽이 훨씬 더 번쩍대니까, 최대한 소박하게 소재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식으로 해 봤어. …스타크에게 카메라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배워둘 걸 그랬군. 벽화나 동상으로 남기진 못해도 아쉬운 대로 기록이 되었을 것을."

 예뻐, 형. 역시 형에게는 붉은 색이 잘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로키는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며 토르의 머리에 뭔가를 꽂았다. 조금 전에 들었던 겨우살이나무 열매이리라. 로키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 콧노래까지 작게 부르고 있었다. 역시 뭔가 조금 이상했다.

"…나중에 예수라는 친구를 만나면 내 그대를 위해 이런 선물도 준비했노라고 이야기해야겠구나."

"아주 좋은 술안주가 되겠지."

로키는 토르의 머리카락에 가볍게 입맞추었다. 자, 다 되었어. 형님. 정말로 예뻐. 로키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일말의 가시도 없는 동생의 목소리였다. 비록 이게 그의 장난이라 해도, 이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다면 속아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문득 생각하게 될 정도로는.

창밖에서 어렴풋이 익숙지 않은 곡조의 노래가 들렸다. 형제는 재차 술잔을 들어 허공에 가볍게 부딪혔다. 얇고 섬세한 잔은 조금만 힘을 주어 잡아도 손 안에서 으스러질 듯이 연약해 보여, 아무리 술이 맛있었대도 '다음 잔!'을 외치며 내리칠 수 없을 것 같았지만―쇠털같이 많이 남은 날 가운데 이런 술자리가 있어도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다른 세계의 신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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